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碩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사진)이 2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8세.
충남 아산시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같은 해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 비평문을 발표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33세에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돼 30여 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1972년 월간 ‘문학사상’ 및 출판사 ‘문학사상사’를 설립했고 ‘이상문학상’을 제정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맡아 냉전 종식을 호소하는 명문 ‘벽을 넘어서’를 만들었고, 굴렁쇠 소년을 기획해 평화의 가치를 세계에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알렸다.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립했다.
‘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 등 300여 권의 저서를 낸 고인은 문학 철학 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 통섭의 대가였다. 정보화 시대에 앞서 나가야 한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합친 ‘디지로그’ 개념을 제시하는 등 시대를 꿰뚫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집필을 이어간 고인은 지식을 행동으로 실천한 진정한 거인이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