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7)가 22일 터키 수도 앙카라를 방문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8)과 회담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이후 “살인범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 경제 위기로 궁지에 몰리자 사우디에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앙카라의 대통령 청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나 밝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이번 회담에선 터키에 대한 사우디의 금융 지원과 중소기업 투자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국 간 항공편을 재개하고, 상호 간 부정적인 언론 보도도 자제하기로 했다. 사우디도 숙적 이란과의 외교 갈등에 대비해 이란과 경제적으로 가까운 터키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양국 관계가) 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터키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와 반대로 금리를 인하하는 정책을 벌여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3.5% 오르는 등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을 장담할 수 없어 석유 부국인 사우디의 투자 등 경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8년 카슈끄지가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사우디 ‘암살조’에게 무참히 살해되자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올 들어 터키는 이 사건의 관할을 사우디에 넘기고 관련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를 모두 포기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