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의 가장 오래된 음악축제 라비니아 페스티벌이 올 6월 주최한 ‘제4회 브리지 작곡 콩쿠르’에선 한국인 최초의 우승자가 나왔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정지수 씨(28)가 그 주인공이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예원학교, 서울예고로 이어지는 클래식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일본 오사카 국제 음악 콩쿠르 2위,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노 콩쿠르 1위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을 휩쓴 클래식 유망주였다.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CJ아지트에서 만난 정 씨는 “저도 어릴 땐 성진이처럼 될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예원학교 동기다. “피아니스트의 가장 큰 숙제는 쇼팽 같은 거장의 곡을 완벽히 연주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저는 악보에서 다른 게 보였어요. 표현 욕구가 폭발했죠.”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 입학한 그는 1년 뒤 돌연 자퇴를 선언하고 미국 버클리 음대에 진학해 재즈 피아노와 재즈 작곡을 전공했다. 이후 CJ문화재단의 장학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 맨해튼 음대 재즈 작곡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19일 CJ아지트에선 그의 단독 공연이 펼쳐진다. 브리지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Moment to Journey’를 비롯해 그가 작곡한 클래식과 재즈 퓨전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Moment to Journey’는 클래식 현악4중주와 재즈트리오(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트럼펫 연주가 들어간 크로스오버 곡이다.
“재즈와 클래식 아티스트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브리지 작곡 콩쿠르 우승자의 연주를 보고 ‘나도 둘 다 해보자’는 용기를 얻었어요.”
지난해에는 장구 연주자와 듀오를 결성해 피아노와 장구 듀오 앨범 ‘Hi, We are Jihye & Jisu’도 발매했다. 정 씨는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재즈를 통해 K팝, K클래식에 이은 K재즈 열풍도 꿈꾼다.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다니면서 한국의 음악교육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모두 서울대라는 목표를 향해 똑같이 연주하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억압되는 모습을 보면서 시스템을 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장르의 융합을 시도하고, 이를 후학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김재희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