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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보내는 택배

Posted September. 03, 2022 07:47,   

Updated September. 03, 202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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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돈 잘 버는 직장에 가게 된 한 시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시인은 낮에 웃었다. 그런데 밤에는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울었다. 나는 그 밤을 훔쳐본 적이 있다. 그때 사회적인 활동과 시 창작은 서로를 밀어낸다고 생각했다. 바깥을 열심히 쳐다보면 그만큼 내면을 적게 바라보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송경동 시인을 보면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운동가 송경동은 시인 송경동을 밀어내지 않는다. 시인 송경동은 단식하는 송경동을 잊지 않는다. 그가 어떤 현장을 열렬히 고민하면 그것은 다시 시로 열렬히 옮겨진다. 시를 보면 어디 하나 고운 풍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의 씩씩함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눈부시게 만든다. 이런 시인도 우리에게 있다. 아니, 우리에게는 이런 시인이 있어야 한다.

 송경동 시인은 최근의 시집에서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시인이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 그 속에서 살 자신의 모습은 오늘의 시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시인의 마음에 있고 시 속에 있지만, 우리 현실에는 없다. 추석이라 또 얼마나 많은 택배가 오고 갈 것인가. 그런데 우리 곁에는 반가운 택배 상자만 있고, 씩씩하고 눈부신 택배 기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