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8세로 암 투병을 해왔던 미국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병원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1977∼1981년 대통령을 지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북핵 위기 중재에 나서는 등 한반도 외교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카터 전 대통령과 부인 로절린 카터 여사가 설립한 카터센터는 18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추가적인 치료 대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여생을 보내며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스피스 치료는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환자에게 연명 치료 대신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고통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피부암 흑색종이 뇌와 간으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교회 주일학교 교사 활동을 이어갔으며 몇 달 뒤 암이 치료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2019년 세 차례 낙상한 뒤에도 회복해 해비탯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최근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돼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8년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이 94세로 별세하면서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이 됐다.
땅콩 농부 출신인 카터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 주지사(초선)를 거쳐 곧바로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다. 1976년에 치러진 이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꺾고 제39대 대통령을 지냈다. 베트남전쟁 패배로 반전 여론이 확산된 가운데 당선된 카터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를 가속화하고 중동전쟁을 치른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협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와 물가 급등, 이란의 미국인 인질 사건 등 악재가 겹치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의 대선에서 패했다.
1981년 56세의 나이로 고향 조지아주로 낙향한 카터 전 대통령은 이후 각종 분쟁 해결사로 활동하며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핵 위기로 전쟁 위험이 고조되자 김일성 사망 14일 전인 1994년 6월 24일 전격 방북해 회담을 갖고 북핵 동결을 논의했으며 이를 통해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워싱턴=문병기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