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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중1 준규, 228분 길에서 헤맸다

Posted March. 30, 2023 08:27,   

Updated March. 30, 20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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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갑자기 혼절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만일 1분, 1초에 생사가 갈리는 응급상황이 닥친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불운에 생명을 잃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안전망을 구축해 왔다. 119에 신고하면 곧바로 구급차가 온다. 신속하게 병원으로 데려간다. 수술해줄 의사를 만나 목숨을 구한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그 믿음을 배신당한 사람 26명을 취재했다. 그중엔 지난해 12월 8일 달리지 못하는 구급차에 탔던 이준규 군(13)이 있었다. 같은 해 10월 25일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수술 의사를 만나지 못한 박종열 씨(39)도 있었다. 228분, 378분 동안 그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표류했다. 골든타임이 허망하게 흘러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겪고 있을지도 모를 ‘표류’의 이야기다.

● 평범한 믿음

이준규

충남 공주휴게소에서 윤영의 차를 돌리게 한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엄마,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중1 아들 준규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평소 아프다고 우는 아이가 아니었다. 윤영은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출장을 취소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다.

“준규야, 엄마가 갈게.” 전화를 끊은 건 오전 11시 50분. 원래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만 준규는 집에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아이인데 유독 눈을 뜨지 못했다. 전날 수영장에 다녀오고는 눈이 아프다고 하더니 밤새 잠까지 설친 모양이었다. 평소 앓던 알레르기 때문일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침 준규도 느지막이 일어나 빵을 먹으면서 유튜브를 봤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한, 지극히 평소다운 모습이었다. 병원도 혼자 다녀올 수 있다고 했다. 분명 다 괜찮을 건데 고속도로는 왜 이리 막히는지, 준규는 왜 더 전화를 안 받는지 모르겠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집에 도착했다. 준규는 거실에 누워 자고 있었다. 곤하게 자는 얼굴을 보니 내내 타들어 가던 가슴이 진정됐다. 윤영은 아이를 더 재울지 고민하다 마음을 바꾼다. “준규야, 병원 가자.” 깨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젓는 준규를 일으켜 앉히고는 잠바를 가지러 방에 들어간다. 그 순간. ‘쿵.’

거실 바닥에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준규, 부들거리며 경련하는 팔과 다리, 그 뒤로 천천히 새어 나오는 소변…. “구급차, 구급차 번호가 뭐지.” 오후 2시 27분, 윤영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는 119에 전화했다.

소변에 젖은 아이 몸을 닦고 있으니 오산소방서에서 왔다는 구급대원들이 문을 두드린다. “혈압이랑 맥박은 정상이에요.” 구급대원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숨이 쉬어진다.

구급대원은 준규가 경련으로 의식이 안 돌아오는 것 같다고, 정확한 원인은 검사해봐야 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경련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걸 윤영은 알고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면 금세 나을 것이다.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곧 겨울방학이 되면 같이 여행도 갈 것이다. “그땐 진짜 놀랐잖아.” 웃으며 오늘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8일, 그날의 윤영은 그렇게 믿었다. 준규가 치료받기까지 228분의 ‘표류’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으니까.

박종열

미옥 역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차를 돌렸다. 일하는 식당에 막 도착했던 터였다. “옥아, 애들 아빠 사고 났단다. 지금 병원으로 갈 수 있나.” 시어머니는 남편 종열이 공장에서 일하다 지게차에 치였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럿 찍혀 있었다. 종열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서른아홉 경상도 남자인 종열은 아내에게 용건 없이 살가운 안부 전화를 거는 남편이 아니다.

오전 11시 10분, 미옥은 경남 김해시 김해중앙병원(현 경희중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종열은 먼지 하나 없이 새하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잿가루 범벅인 얼굴이 더욱 새까매 보였다. 종열은 얼굴을 찌푸리고 신음하며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휴대전화를 꺼내 가입한 보험 내역을 보여준다. 병원비 처리할 일이 있으면 여기에 연락하라는 뜻이다. 종열의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주던 미옥은 ‘그래도 견딜 만한가 보네’ 하고 마음을 조금 놓았다.

정형외과 의사는 왼쪽 허벅지가 부러졌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수술도, 급한 수술도 아니라고 했다. 입원실로 옮겨 수술 일정을 잡으면 된다고 했다. 미옥은 마음을 조금 더 놓았다.

다리 걱정을 덜자 어느새 부부는 두런두런 두 아들 얘기를 하고 있다. 여섯 살 첫째와 두 살 둘째에게 ‘당분간 아빠가 놀아주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좀 있음 애들 하원이잖아. 장모님한테 전화했나?”

“오지 말라캤다. 오빠 수술 잡히는 거 보고 내가 데리러 가면 되겠던데.”

병원 주차장에서 전화가 왔다. 5시간 후에 주차장 문을 닫는다고 한다. 미옥은 곧 차를 뺄 거라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25일 그날, 미옥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불안한 조짐

이준규

구급차 안은 생각보다 좁고 답답했다. 창문은 막혀있고 벽은 온갖 의료 장비로 빼곡하다. 호흡 및 기도 확보 유지 장비, 정맥 주사, 고정 산소소생기…. 하나같이 윤영을 무섭게 하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구급대원들은 바쁘게도 움직였다. 준규를 눕히고, 집게처럼 생긴 검사 장비에 손가락을 끼우고, 가슴을 세게 문질러 반응을 살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윤영은 준규의 왼쪽 발치에 앉아 두 무릎을 꼭 붙였다. 혹시 방해가 될라 작은 체구를 더 웅크렸다.

“오산소방서 세교구급차입니다. 화성에 있는 13세 남아인데 현재 멘털(의식)이 스투퍼(혼미)합니다. 경련하는 걸 어머님이 봤다고 합니다. 수용 가능할까요?”

윤영은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병원인 것 같았다. 구급대원은 통화 중간중간 준규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있는지, 평소 앓는 병이 있었는지를 윤영에게 물어 수화기 너머에 전했다.

왜 병원으로 바로 달리지 않고 굳이 전화를 거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필요한 절차라는 게 있을 거라고 윤영은 생각한다. 그저 믿고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준규는 안전한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통화가 끝났다. 이제 출발하려나 보다. 안전띠도 없는 간이 의자에서 윤영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준규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아이 무릎을 붙잡은 손에도 힘을 준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구급대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한림대병원 안 된대. 소아과 전문의 비번이래.”

박종열

종열은 입원실 607호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지 4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2시 20분이었다. 상태를 보러 온 의사가 종열의 다리 붕대를 들추더니 허둥대기 시작했다. 뼈만 부러진 줄 알았는데 혈관도 끊어지거나 막힌 모양이라고, 이 병원엔 혈관을 이어 붙일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서둘러 수술하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종열은 그런 불운이 제 것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최악을 가정해 설명하는 거겠지.’ 종열은 왼쪽 엄지발가락을 움직여 봤다. 꿈틀거린다. 피어오르던 불안이 사그라든다. 이렇게 멀쩡한 다리를 자르게 될 리가 없다.

종열은 다시 1층 응급실로 돌아왔다. 종열의 발치에서 네 걸음쯤 떨어진 곳에선 응급실 의사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지게차 사고 환자고요…받아줄 수 있을까요?” 종열이 갈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 듯하다.

의사의 책상 위에 가까운 병원과 전화번호가 잔뜩 적힌 종이가 보였다. 이름이 익숙한 큰 병원들이었다. 종열이 사는 김해에서 동쪽으로는 부산이, 서쪽으로는 경남 창원시가 있다. 두 도시에 있는 대학병원만 10곳이 넘는다. ‘병원이 참 많네.’ 종열은 새삼 생각했다. 그중 어디로 옮기게 될지 궁금해졌다.

‘이왕이면 경상대병원이 좋겠다. 집에서 차로 15분이니 아내가 왔다 갔다 하기에 덜 힘들 것 같다. 부산대병원도 괜찮겠지. 부산에 사는 어머니께 간호를 부탁하면….’

“지금 부산 경남 병원들이 다 안 되거든요.” 의사의 외침에 종열의 생각이 끊겼다.

● 예상치 못한 배신

이준규

윤영이 사는 화성 동탄신도시는 구급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동네다. 반경 10㎞, 20분 거리 안에 대학병원 4개를 포함해 응급실이 12개가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가로지르는 구급차를 볼 때마다 윤영은 누가 얼마나 다쳤기에 저렇게 급히 가나 궁금해했다.

준규가 탄 구급차는 좀 다르다. 사이렌도 안 켰고 20분 넘게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비상등 소리만 내며 서 있다. 그 안에서 구급대원들은 쉴새 없이 전화를 하고 있다. 처음엔 한 명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는데 어느새 다른 구급대원도 거들고 있었다. 심상치 않다.

“인근 병원이 다 안 된다고….”

“(의사 선생님)…안 계시나요….”

준규를 받아줄 수 있냐는 것. 간단한 질문인데 병원은 대답을 주기 전 물어야 할 게 많은 듯했다. 구급대원은 했던 말을 또 하고 ‘잠시만요’ 하며 사라진 수화기 너머의 말을 오래 기다렸다. 그 끝에 기다리던 답은 없었다. 매번 알겠다는 맥 빠진 목소리로 전화가 끝났다. 허탈할 새도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통화는 다시 시작되고, 두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울려 퍼지고, 윤영은 이번엔 다를 거라고 기대하며 그걸 듣는다.

박종열

수화기를 내려놓은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다. “부산 일대 병원에서 다 수술이 안 된대요. 대구나 그 위로 가야 할 수도 있어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을 전한 의사는 종열이 뭐라 물을 틈도 없이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응급실이 고요했다. 오전에 왔을 땐 시장통처럼 붐볐는데 지금은 종열의 신음과 의사의 전화 소리만 남았다. 들어보니 간호사가 119구급대의 전화를 전부 거절하고 있었다. 한 명뿐인 응급실 의사가 1시간 넘게 전화통을 붙들고 있으니 새 환자를 못 받는 게 당연했다.

종열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다리는 어떻게 되는 건지, 부산에 있는 그 많은 병원에서 왜 오지 말라고 하는지, 수술이 될 만한 병원만 골라 물어볼 수 없는 건지. 하지만 꾹 참았다. 의사를 방해하면 수술이 더 늦어질 것 같았다. 벌써 3시 20분. 다리가 부러진 지 5시간이 지났다.

미옥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큰 병원에 지인이 있으면 연락해 보세요.” 의사의 말에 시어머니에게 부탁한 상태다. 먼 친척이 부산의 큰 병원에서 일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주변에 폐 끼치기를 싫어해 쉬이 부탁을 해 본 적 없는 미옥이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 종열이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곧 전화벨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반색했던 미옥이 맥 풀린 목소리를 냈다. “어디시라고요? 아, 주차장요…. 차를 언제 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잠시 후 휴대전화가 다시 짧게 진동했다. ‘010-XXXX-XXXX, ○○네 조카 ○○○간호사.’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받은 문자를 들고 의사에게 달려간 미옥이지만 의사는 곤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그 병원 외상외과장한테서 확답을 받은 게 아니면 소용이 없다고 한다. 미옥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인맥이 없어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는 건가.’ 내내 삼켰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코로 숨 쉬세요. 안 그러면 실신해요.” 간호사가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종열이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미옥은 종열에게 달려가 손을 잡는다. “숨 쉬어라, 오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는 없었다.

● 선택지 없는 선택

이준규

구급차 안에서 윤영은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 했다. 구급차는 목적지도 없이 일단 북쪽으로 출발했고, 가는 도중 계속 병원에 전화하며 방향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러다 구급대원이 물어왔다. 한 병원은 소아과 의사가 있는데 대기가 길었다. 다른 병원은 응급처치는 되지만 자세한 검사는 어려울 수 있다. 어디로 가겠느냐고 묻는다. 응급처치라도 된다는 곳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3시 32분, 구급차는 마침내 아주대병원에 도착했다. 준규의 뇌 사진은 이상했다. 맑은 물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검은 점이 번지고 있었다. 뇌혈관이 터진 거였다. 병원을 찾아 헤매는 동안 준규 머릿속에는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뇌출혈입니다. 출혈이 너무 많아요. 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응급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뇌출혈’이라는 단어가 생경했다. ‘준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신경외과 선생님은 언제 오는 거지. 올 수 있는 게 맞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한 윤영은 모든 게 믿기 어렵다.

곧 윤영은 ‘수술 동의서’라고 적힌 종이 뭉치를 건네받았다. 41장의 종이에 정신없이 서명하는 동안 ‘발생 가능한 부작용’은 애써 모른 척했다. ‘뇌경색, 뇌척수액 누출, 마비, 의식불명, 다발성 장기 기능 저하, 심각한 합병증으로 사망 가능성…’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다른 선택지란 없다.

준규가 뇌출혈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나았을까. 아이 머릿속에 피가 차오르는 줄 알았다면 구급차에서 한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미쳐버렸을 것이다. 아니, 알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우리 아이가 죽을 것 같다고, 좀 받아달라고 응급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누웠어야 했나. 내가 무지했다. 아무것도 몰랐다.

오후 6시 15분, 준규가 수술실 문 안으로 사라졌다. 119에 신고한 지 228분 만이었다. 굳게 닫힌 수술실 문을 보며 윤영은 생각했다. 준규는 깊이 잠들어 있는 거고 이건 그냥 나쁜 꿈이라고. 하지만 꿈이 이렇게 긴 법은 없는 거였다. 지난해 12월 8일, 한 아이의 엄마가 겪은 일이다..

박종열

오후 4시 5분, 응급실 의사가 종열을 받아준다는 병원을 드디어 찾았다고 했다. 종열은 어디 있는 곳인지 묻지도 않고 말했다. “가야지요, 일단 갑시다.” 260㎞ 떨어진 충북 청주시에 있는 충북대병원, 김해중앙병원으로부터 약 3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수액을 다섯 번 바꿔 다는 동안 발가락 끝의 느낌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리 달려 충북대병원에 도착한 건 오후 7시 1분. 미옥은 다리 혈관을 수술해준다는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가리키는 모니터 속 영상에는 하얀 선이 보인다. 종열의 다리 혈관이라는 그 하얀 선은 무릎이 지나는 지점에서 사라졌다. 의사는 골든타임이 이미 많이 지났다고, 다리를 절단할 가능성이 90%라고 했다. 미옥은 말을 잃는다.

의사는 수술에 동의하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오후 8시 38분, 종열은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갔다. 혈관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지 378분 만이었다. 마취 기운이 도는 동안 의사가 손을 잡아줬다. 종열은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 다리를 살려주세요.” 스르르 잠이 들려던 찰나, 종열은 온 힘을 다해 얘기했다. “제 다리 좀 살려주세요.” 지난해 10월 25일, 두 아이를 둔 한 아빠가 겪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