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유출 “변명 여지없다”는 美, “상당수 위조” 덮기 급급한 韓

한미 정상회담 의제 협의차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어제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출국에 앞서 ‘문서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선 “미국이 확인을 해줬다”고 했다. 김 1차장은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 같은 주제로 물어보려면 떠나겠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도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미국 기밀문서 유출 사건을 다루는 대통령실의 태도를 보면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기 짝이 없어 오히려 의혹을 키우는 모양새다. 당장 미국 백악관조차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기밀문건 유출 사실을 인정하고, 미국 언론들은 일부의 수정이나 변조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 문서가 진본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만 반복했고, 심지어 더는 묻지도 말라는 고압적 태도까지 보였다.

특히 미국 측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겠다고 선부터 긋는 우리 정부의 지나친 발빠름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정보전쟁에 사활을 거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동맹 간에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만큼 한미가 이번 논란을 두고 갈등을 드러낼 이유는 없다. 그렇다 해도 동맹 간 신뢰에 의문을 갖게 한 의혹에 대해 주권국가로서 따질 것은 따지는 게 당연하다. 한미동맹이 이런 문제로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

70년을 이어온 동맹이라도 매 사안에 입장을 같이할 수는 없다. 특히 제3, 제4의 국가가 지켜보는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의 경우 외부에 그대로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맹 최우선’을 핑계로 모든 사안을 묻어둘 수만은 없다.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국민에게 설명하고 공개가 어렵다면 이해를 구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늘 미국에 기대기만 하는 하위 동맹국이라는 국민적 자괴감만 깊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