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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모르고 이름 빌려주니 ‘저질 법안’ 판치는 것

내용도 모르고 이름 빌려주니 ‘저질 법안’ 판치는 것

Posted June. 20, 2023 08:14,   

Updated June. 20, 202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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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시작된 2020년 5월30일부터 3년간 국회의원 한 명당 법안 공동발의에 참여한 건수가 평균 79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2000건 넘는 법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5명이나 됐고, 1000건이 넘는 법안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전체 의원의 31%였다. 의원 본인이 검토해서 대표 발의한 법안건수(평균 66건)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의원들이 법안을 충실히 준비하기 보다는 법안 내용도 모른 채 이름만 빌려주는 품앗이 발의를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회기가 거듭될수록 전체 법안발의 건수는 크게 늘어난 반면 법안의 가결률은 차츰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16대 국회 때 2507건이었던 발의건수는 20대 국회 때 2만4141건으로 증가했다. 21대 국회는 임기가 1년 정도 남았지만 이미 2만2046건(18일 기준)이 발의된 상태여서 이 속도라면 20대 국회 발의건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안 가결률은 16대 국회에서 37.7%였지만 20대 국회 때 13.2%, 21대 국회에서는 9.4%로 계속 하락했다. 공동발의 법안 중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당수 저질 법안들이 최종 심사 과정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결과로 분석된다.

공동발의가 남발되면서 본회의 때 의원 본인이 공동발의한 법안에 기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공동발의 건수 상위 의원 10명 중 4명이 본인 이름을 올린 법안에 기권한 적이 있었다. 해당 의원들은 “주요 법안이 아닌 법안들은 다 기억할 수 없어 잘못 투표했다”라고 해명했지만 구차한 변명이다. 의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올린 법안에 대해 향후 국가의 미래나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조차 없었다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법안 공동발의 제도는 법안을 발의하기 전 동료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구해 입법 기준선을 높이고 법안 품질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묻지 마’ 공동발의라면 애초 도입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의원들의 공동발의 남발은 법안발의 건수가 총선 공천 평가 등에 반영되는 입법실적 쌓기와 무관치 않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여야 지도부가 의원들 평가기준을 형식적인 법안 발의건수 보다 입법 적정성 등을 따지는 질적 평가로 바꿀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