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말년까지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는 연주자가 “베토벤을 연주하면서 자기만의 해석을 덧붙이듯” 화가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가 1890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도 외젠 들라크루아의 ‘착한 사마리아인’을 연주한 그림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예수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사의 질문에, 강도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 체하고 지나가는 사제나 레위인이 아니라 그를 가엾이 여기고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준 사마리아인이 진짜 이웃이라고 답했다. 입으로만 율법과 신앙을 들먹이는 위선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마리아인, 지금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 짓밟히는 서안지구에 살던 사마리아인이 진짜 이웃이라는 신랄한 답변이었다.
들라크루아는 다친 사람을 노새에 태우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고흐는 그 그림을 모방하고 거기에 해석의 옷을 입혔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에는 노새가 왼쪽에 있는데, 고흐의 그림에는 오른쪽에 있다. 들라크루아의 사마리아인은 붉은 겉옷을 입은 강렬하고 다부진 모습인데, 고흐의 사마리아인은 노란 겉옷을 입은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이다. 고흐의 노란색은 노랗다기보다는 그가 즐겨 그린 해바라기 색깔이다. 사마리아인의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색깔들의 향연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갈색 노새마저도 주인의 마음에 감동했는지 자기 등에 실리는 다친 사람의 무게를 앞발을 모으고 묵묵히 견디고 있다.
정신병원에 있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고 두 달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림에서 어느 쪽이었을까. 사마리아인이었을까, 상처 입은 남자였을까. 그림을 보는 우리는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든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