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열병식’에서 ‘핵어뢰’를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 투발 무기를 대거 과시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2시간여 동안 열린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중국·러시아 대표단과 나란히 참석해 행사 내내 각별한 친밀감을 표하는 등 북-중-러 밀착 관계를 강조했다. 북한은 2020년 10월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시작으로 ‘6연속 야간 열병식’을 이어오고 있다.
● ‘핵어뢰’ 열병식에 첫 등장
28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전날 열병식에선 핵어뢰 ‘해일’ 4발이 대형 트럭에 실린 채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북한은 올해 3, 4월 해일의 수중 폭발 시험을 세 차례 공개했다.
이 밖에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극초음속미사일, 초대형방사포, 순항미사일, 신형 전차 등도 줄줄이 등장했다. 행사장 상공엔 26일 김 위원장과 러시아 대표단이 참관한 ‘무장장비전시회’에서 공개된 신형 무인정찰기(북한판 글로벌호크)·무인공격기(북한판 리퍼) 여러 대가 시위비행을 했다. ‘북한판 리퍼’는 날개에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모습으로 4, 5대가 등장했다.
열병식의 끝엔 예년처럼 ‘괴물 ICBM’인 화성-17형(액체연료 ICBM)과 화성-18형(고체연료 ICBM)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4, 5기가량이 동원된 걸로 추정된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화성-18형이 등장하자 김 위원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거수경례를 했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중-러가 용인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풀이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 러시아가 대북 제재 결의 메커니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연출된 장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2월 건군절 75주년 야간 열병식에선 화성-17형 11기, 화성-18형 4, 5기 등 역대 최대 규모의 ICBM이 동원된 바 있다. 군 소식통은 “현재로선 2월 열병식 규모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열병식에 동원된 무기장비의 구체적 현황을 분석중”이라고 말했다.
● 김정은 좌우에 중-러 대표단 포진
김 위원장은 이날 검은 양복을 입은 채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오른쪽엔 군복 차림의 쇼이구 장관이, 왼쪽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리훙중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이 자리 잡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병식 도중 환한 표정으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악수를 하는 등 북-중-러 간 결속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2월 건군절 열병식에 참석했던 김 위원장의 아내 리설주와 딸 주애는 보이지 않았다.
홍 실장은 “기존 열병식은 리설주, 김주애 등을 동원해 대내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적 분위기였다면 이번엔 중-러와의 밀착 행보 과시를 통한 실용적인 외교안보 메시지에 주력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육성 연설은 없었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연설에서 “미제와 ‘대한민국’의 역적들은 감히 우리 국가의 정권 종말에 대해서까지 떠들면서 미친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그 누구의 정권 종말에 대해 입에 올리기 전에 자기의 멸망에 대해 걱정해야 할 때이며 전략자산들을 조선반도에 들이밀기 전에 미 본토 전역을 뒤덮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핵무력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한미 경고를 ‘미 본토 핵타격 협박’으로 맞받아친 것. 외교가에선 “미국 등 국제사회가 러시아, 중국을 비난할 소지가 크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직접 메시지를 내지 않는 등 수위를 조절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날 열병식에선 김일성 등 6·25전쟁 지휘부의 대형 초상화와 당시 참전부대 상징 종대가 맨 앞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6·25 첫 유엔군 참전부대인 ‘스미스 특공대’와 싸운 인민군 부대 상징도 포함됐다.
군 관계자는 “같은 시간대 6·25 발발 초기 ‘스미스 특임대(특공대)’가 도착했던 부산 영화의광장(옛 수영비행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정전 70주년 기념식을 의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