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경기도의 한 종합운동장. 119구급대가 중증외상을 당한 40대 남성을 가까운 권역외상센터로 옮기기 위해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헬기가 도착하기 직전, 환자가 심정지에 빠졌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기 전에 먼저 환자를 구급차 밖으로 빼내야 했다. 구급차 내부가 좁은 탓이었다.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고, 기도를 확보하고, 출혈 부위를 누르는 등 여러 대원이 동시에 응급처치해야 했지만 12인승 승합차를 기반에 둔 국내 소형 구급차 안에서는 불가능했다. 구급대원들은 구급차 밖에서 초속 20m가 넘는 헬기의 하강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위태하게 환자의 심장을 마사지해야 했다.
30일 소방청에 따르면 국내 119구급차 1811대 가운데 1737대(95.9%)는 ‘스타렉스’나 ‘스타리아’ 등 12인승 승합차를 활용한 소형차다. 소형 구급차는 앞뒤 길이(전장)가 5.15∼5.25m로 짧다. 구급차 내 환자실에 들것을 싣고 나면 누워 있는 환자 머리 위로는 공간이 남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도를 확보할 때 구급대원이 비스듬히 앉은 채 환자의 목 안쪽도 보지 못하고 튜브를 삽관해야 한다.
환자 옆에 설치된 좌석도 구급대원 2명과 보호자 1명이 앉으면 꽉 차 구급용 가방을 올려둘 공간만 간신히 남는다. 119구급대는 평소 운전자 1명과 구급대원 2명 등 3인 1조로 활동한다. 심정지 등 중증환자가 발생하면 2개 팀(최소 5명)이 한 구급차에 함께 탄다. 운전자를 제외한 구급대원 4명이 정신없이 달리는 소형 구급차에 함께 타면 동선이 부딪쳐 부상 위험도 크다.
소방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15인승 승합차인 ‘쏠라티’를 활용한 중형 구급차를 현장에 도입했다. 중형 구급차는 전장이 6.19m로 소형 구급차보다 1m 가까이 길어 환자 머리맡에 구급대원이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형 구급차는 전국에 74대(4.1%)뿐이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14∼15인승 승합차를 주력으로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가정의학과 교수)은 “구급대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CPR과 기도 확보인데, 국내 소형 구급차는 이에 적합하지 않다”라며 “정부와 자동차 회사가 손을 맞잡고 충분한 내부 공간과 기동성을 겸비한 구급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조건희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