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고 싶다. 아침 병원에서 간절하게 행복하길 바란 적 있다. 세상에서 행복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는 병원 아닐까. 여기에만 오면 온갖 걱정과 근심, 불행들이 뭉게뭉게 피어나 행복이란 아주 멀고 감상적인 사치처럼 느껴지니까. 나는 수술 중인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세 살 때 작은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곤 했지만 세 살배기 몸에 전신마취를 하고 배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진행하는 수술이었다. 나는 보호자로 수술실 문턱까지 아이와 머물렀다. 무균복을 입고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마취제가 투여되자마자 아이가 픽 쓰러졌다. 종이 인형처럼 내 품에 고꾸라졌다. “잠든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실 들어갑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목이 메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를 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빈 복도였다. 덩그러니 혼자가 되자 비죽 눈물이 새어 나왔다. 심란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복도에 선 채로 아이를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그 시간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아이들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하루. 늦잠 자고 일어나 껴안고 뒹굴거리던 아침. 아이스크림 먹으며 타박타박 돌아오던 골목길. 크레파스로 그린 엄마 얼굴 선물 받은 어버이날. 잠든 아이들 들여다보다가 뽀뽀해주던 밤. 지나고 나서야, 멀어지고 나서야 선명해졌다. 나 정말 행복했었구나. 행복과 가장 먼 장소에서 행복을 찾았다. 아이가 나오면 안아줘야지. 그때 나에게 가장 가깝고 간절한 행복은 포옹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엄마를 발견하곤 와앙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오래 안아주었다.
한밤중에 잠든 아이를 지켜보았다. 하도 곤히 자서 살아있는 건지 불쑥 겁이 났다. 아이의 코에 손을 대보고 몸을 살피고 만져보았다. 손마디에 느껴지는 여린 숨결, 도근도근 뛰는 심장박동과 따스한 살결. 아이는 살아있었다. 대체 뭘까. 잠든 아이를 만져보며 안도하는 이 마음은. 살아있다는 건, 실은 너무나 위태롭고 연약한 일일지 모른다. 작은 인간이 숨 쉬고 자라는 건 당연하지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깨달았다. 내 몸에서 나와 울고 웃고 자라고 아프고 잠들고 다시 눈 뜨는 이 생명을 나는 사랑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도 누군갈 사랑하는 일은 가능하구나. 내 걱정과 슬픔과 아픔, 그리고 행복. 어느새 나의 모든 이유가 된 아이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넘겼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아이가 아픈 밤, 살아 있는 아이를 만져보며 안도하는 밤이 세상 모든 부모에게 비밀처럼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