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진 유럽의 뼈아픈 후회
Posted September. 11, 2023 08:36,
Updated September. 11, 2023 08:36
가난해진 유럽의 뼈아픈 후회.
September. 11, 20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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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선 최근 유력지 르몽드의 뉴욕 특파원이 쓴 칼럼이 한동안 화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80%’란 제목의 칼럼이다. 미국 GDP가 유럽의 1.8배로 불었단 얘기다. 이 칼럼은 르몽드 온라인판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꽤 오래 걸려 있었다. 뉴스를 접한 프랑스인들의 충격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며 경쟁한 서방의 양대 축 아니던가. 유럽 국가들의 GDP를 미국 각 주(州)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싱크탱크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GDP는 미국 50개 주 중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보다 살짝 앞서는 수준이었다. 프랑스의 GDP는 48위인 아이다호와 49위인 아칸소 중간 수준이었다. 소비재의 경쟁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럽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미국 테슬라에 밀린 지 오래라는 평이 많다. 경제 파워는 문화 지형도 바꾸고 있다. 유럽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기자가 20년 전 파리에 머물 때만 해도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파리지앵들은 ‘영어하는 외국인’을 냉대하곤 했다. 프랑스에선 프랑스어를 하는 게 당연하단 고집이 느껴졌다. 지금은 오히려 영어로 말을 걸면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프랑스인들을 많이 만난다. 2008년 프랑스 교육 노조는 정부의 ‘방학 기간 영어 교육 강화’ 방침에 자국어가 우선이라며 반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방학 때 프랑스 학부모들의 영어 캠프 등록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경제지표만 성공의 척도가 될 순 없다. 복지제도나 정주 여건은 유럽이 더 우수하다는 평이 많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서 인종 혐오 범죄와 심각한 사회 불평등에 불만을 품고 유럽으로 이민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거주 자격을 얻은 미국인은 네덜란드에서 55%, 스페인에선 13%가 증가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약 3배로 뛰었다. 하지만 유럽인들로선 이에 자족할 수가 없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한 경제 침체가 닥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지가 좋다한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소용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러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2000년대 초반 빅테크가 출현할 당시 신(新)기술 투자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미국 증시를 이끄는 애플, 구글이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유럽은 ‘대항마’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0년 유럽 국가들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에서 “2010년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지식기반 경제가 되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뼈아픈 후회도 있다.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가 이미 10년 전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생산성 하락의 중요성을 지적했을 때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는 푸념도 들린다. 생산성이 증가하면 회사와 직원의 이익이 모두 증가해 더 강한 경제를 만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인공지능(AI)의 기술 혁명기와 저출산 및 고령화 시대를 맞은 한국으로선 유럽의 후회를 무겁게 들어야 한다. 유럽이 미국과 비교하듯 한국은 흔히 일본과 비교하는데 경제성장률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올 1분기(1∼3월) 한국의 GDP 성장률은 0.3%로, 일본(0.9%)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2분기엔 한국은 0.6%, 일본은 1.5%로 격차가 더 커졌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의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현실이 한국에 데자뷔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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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선 최근 유력지 르몽드의 뉴욕 특파원이 쓴 칼럼이 한동안 화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80%’란 제목의 칼럼이다. 미국 GDP가 유럽의 1.8배로 불었단 얘기다. 이 칼럼은 르몽드 온라인판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로 꽤 오래 걸려 있었다. 뉴스를 접한 프랑스인들의 충격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며 경쟁한 서방의 양대 축 아니던가.
유럽 국가들의 GDP를 미국 각 주(州)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싱크탱크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GDP는 미국 50개 주 중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보다 살짝 앞서는 수준이었다. 프랑스의 GDP는 48위인 아이다호와 49위인 아칸소 중간 수준이었다. 소비재의 경쟁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럽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미국 테슬라에 밀린 지 오래라는 평이 많다.
경제 파워는 문화 지형도 바꾸고 있다. 유럽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기자가 20년 전 파리에 머물 때만 해도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파리지앵들은 ‘영어하는 외국인’을 냉대하곤 했다. 프랑스에선 프랑스어를 하는 게 당연하단 고집이 느껴졌다. 지금은 오히려 영어로 말을 걸면 ‘영어를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프랑스인들을 많이 만난다. 2008년 프랑스 교육 노조는 정부의 ‘방학 기간 영어 교육 강화’ 방침에 자국어가 우선이라며 반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방학 때 프랑스 학부모들의 영어 캠프 등록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경제지표만 성공의 척도가 될 순 없다. 복지제도나 정주 여건은 유럽이 더 우수하다는 평이 많다. 이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서 인종 혐오 범죄와 심각한 사회 불평등에 불만을 품고 유럽으로 이민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거주 자격을 얻은 미국인은 네덜란드에서 55%, 스페인에선 13%가 증가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약 3배로 뛰었다.
하지만 유럽인들로선 이에 자족할 수가 없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한 경제 침체가 닥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지가 좋다한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소용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러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2000년대 초반 빅테크가 출현할 당시 신(新)기술 투자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미국 증시를 이끄는 애플, 구글이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유럽은 ‘대항마’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0년 유럽 국가들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에서 “2010년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지식기반 경제가 되겠다”고 야심차게 선언했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뼈아픈 후회도 있다.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가 이미 10년 전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생산성 하락의 중요성을 지적했을 때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는 푸념도 들린다. 생산성이 증가하면 회사와 직원의 이익이 모두 증가해 더 강한 경제를 만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인공지능(AI)의 기술 혁명기와 저출산 및 고령화 시대를 맞은 한국으로선 유럽의 후회를 무겁게 들어야 한다. 유럽이 미국과 비교하듯 한국은 흔히 일본과 비교하는데 경제성장률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올 1분기(1∼3월) 한국의 GDP 성장률은 0.3%로, 일본(0.9%)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데 2분기엔 한국은 0.6%, 일본은 1.5%로 격차가 더 커졌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의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현실이 한국에 데자뷔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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