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최근 북한과 러시아 간 컨테이너 1000여 개 분량의 무기 지원이 이뤄졌다며 이를 입증할 위성사진을 13일(현지 시간) 전격 공개했다. 지난달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 정상회담(13일)이 열리기 전부터 북한이 탄약 등 군사 장비를 러시아에 대규모로 보내온 정황을 이례적으로 먼저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지원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지원한 정황 등까지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의 대북 지원과 관련해 “추정되는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선박을 이용한 컨테이너 운송 외에도 북-러 접경지에선 이달 들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이동하는 대형 화물 열차 이동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이나 전투기 등 첨단 무기와 관련한 기술·장비 등을 지원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
● 북-러 정상회담 전 대규모 무기 이동
13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브리핑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할 무기를 인도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면서 공개한 위성사진은 총 3장이다.
사진에는 지난달 7일 북한 나진항 부두에 쌓여있던 20피트 표준 규격의 해상 운송 컨테이너 약 300개가 선박 및 열차를 통해 러시아 운송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컨테이너들이 이달 1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90km 떨어진 러시아 남서부 티호레츠크의 탄약고로 옮겨진 모습도 포착됐다. 티호레츠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 보급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도 15일 민간 위성사진 업체 ‘플래닛 랩스’의 12일 나진항 위성사진에 110m 길이의 대형 선박이 컨테이너를 옮길 때 사용하는 대형 크레인 옆에 위치해 있었다고 보도했다. VOA는 “이곳에 처음 대형 선박이 정박한 것은 8월 26일”이라며 “(이날부터) 14일 사이 이곳에 정박한 길이 100m 이상 선박은 4척”이라고 했다.
이 같은 정황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러시아로 이동(지난달 10일)하기 전 러시아에 북한의 무기가 공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 당국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러시아에 무기를 보낸 북한이 7월 27일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일)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방북을 계기로 무기 지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정 등을 맺고 대규모 지원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한미, 휴민트로 러의 대북 군사지원 정황 포착
우리 정부는 미 정부와 공조해 위성 및 휴민트(인적 정보) 등으로 러시아의 대북 지원 정황도 일부 포착했다고 한다. 커비 조정관도 “북한이 전투기, 지대공미사일, 장갑차, 탄도미사일 생산 장비 등 군사 물자와 첨단 군사기술을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가 이미 북한에서 컨테이너를 하역한 것도 포착했는데, 러시아가 물량 일부를 초기 인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의 대북 지원과 관련한 핵심 증거 찾기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러 간 무기 거래의 구체적 정황을 전격 공개하면서 향후 한미일을 중심으로 한 대북·대러 제재 공조가 본격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도 “러시아에서 북한으로의 모든 기술 이전과 북-러 간 군사 협력 확대는 지역 안정과 핵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킨다”며 북-러 간 무기 거래를 돕는 세력들을 추가 제재하겠다고 경고했고, 우리 외교부도 “추가 조치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한미일은 16,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3국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제재 카드를 비롯한 3국 차원의 공동 대응 등을 전반적으로 논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쥐고 있는 만큼 3국은 향후 안보리 차원의 제재보다는 우방국 간 중첩된 독자 제재 등을 통해 북-러 군사협력에 대응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미 지난달 21일 북-러 간 무기 거래와 관련된 북한인과 기관을 대북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신규진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