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023년에야 중증장애인이 (아쿠타가와상을) 최초로 수상하게 됐는지 모두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올 7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시상식. 수상자 이치카와 사오 씨(43)는 단상에 올라 이렇게 일갈했다. 그는 목에 기관절개 호스를 꽂고, 전동 휠체어를 탔다. 선천적으로 ‘근세관성 근병증’이 있어 얼굴은 한쪽으로 기울고, 허리는 굽었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이 소설은 처음으로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써낸 소설입니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중편소설 ‘헌치백’(허블)은 일본에서 출간 후 30만 부가 팔리며 화제를 모았고, 지난달 31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장애 예술가가 주목받는 건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다. 카메라 앞에서 도발적인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간은 이치카와 씨와 같은 질환이 있는 중증장애인 여성 샤카의 이야기다. 샤카는 좁은 방 안 침대에 누워서 태블릿PC로 인터넷에 야한 소설을 쓰며 산다. 샤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명으로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고 쓰며 욕망을 표출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받은 재산으로 돈을 주고 남성 간병인과 섹스를 하려다가 끝내 실패하고 좌절한다.
소설은 장애 여성의 삶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같은 소설 속 문장은 연민의 시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당사자만 닿을 수 있을 법한 깊이를 보여준다.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에 대해 이치카와 씨는 “제가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이라며 “문학은 항상 새로움을 원하니까”라고 쿨하게 답했다.
소설은 또 ‘R18’(성인 소설), ‘슈퍼달링’(여자들이 이상형으로 손꼽는 남자) 같은 일본 인터넷 문화와 은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문학적으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난 오랫동안(약 20년) 시대와 사회를 빠르게 반영하는 라이트노벨을 써 왔다. 순수 문학의 좁고 닫힌 세계에 시대의 분위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창동 감독(69)의 영화 ‘오아시스’(2002년)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 여성의 성(性)과 삶을 그린 이야기가 자신에게 창작의 원천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한센병, 뇌성마비 등 장애를 다룬 예술은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장애 예술이 주류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일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중증장애인은 교육을 받고 독서하기 힘들다. 교육이나 독서를 돕는 환경이 없으면 중증장애인 예술가가 생겨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장애인이 읽기 어려운 종이책 중심이다. 전자책(e북)과 오디오북 보급이 많아진다면 장애인이 적극적으로 예술에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머를 담아 말했다.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저는 (장애 때문에) 집에서 나갈 수 없지만, 소설로나마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
이호재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