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대선에서 5선에 도전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72)이 19일 영하 5도의 날씨에도 얼음물에 입수했다. 최근 건강 이상설이 거듭되는 와중에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하지만 다음 달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2년을 앞두고 남편, 아들 등을 전장에 보낸 사람들이 푸틴 대통령의 선거 캠프를 찾아가 “가족을 돌려 달라”고 촉구하는 등 전쟁 장기화에 따른 반발 여론 또한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은 19일 새벽 푸틴 대통령이 정교회의 주현절 전통에 따라 얼음판에 뚫린 구멍 안에 몸을 담갔다고 밝혔다. 다만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의 주현절 얼음물 입수를 2018년 처음 거론했고 사진도 대부분 공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1년에도 그의 얼음물 입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주현절은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믿는 정교회가 매년 1월 19일 아기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에 신자들 또한 세례를 받듯 얼음물에 몸을 담그는 전통을 고수한다. 이날 수도 모스크바의 온도가 영하 5도를 기록했지만 상당수 시민이 얼음물에 몸을 담갔다. 이 모습은 소셜미디어 등에 널리 퍼졌다.
이렇듯 푸틴 대통령이 애써 건재함을 강조하려 하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또한 고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병사 가족들의 모임 ‘집으로 가는 길’은 20일 푸틴 대통령의 선거 캠프를 찾아 항의했다.
2022년 10월 남편을 우크라이나 전장에 보냈다는 마리아 안드레예바 씨는 “내 남편이 그곳(우크라이나)에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푸틴이 내렸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명령은 언제 내릴 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푸틴 캠프 관계자가 ‘조국을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자 안드레예바 씨는 “모든 것을 쥐어짜고 생명까지 앗아가야 하느냐. 그래서 병사들이 (팔다리가 절단된) 통나무꼴이 돼서 돌아오고 있느냐”고 외쳤다. 그는 딸이 언어 장애까지 겪고 있다며 “우리 가족의 모든 문제는 남편이 돌아와야만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장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판이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안드레예바 씨의 발언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최근 수주간 모스크바와 일부 대도시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인 징집병 아내들이 남편의 귀환을 요구하는 집단 거리 시위도 벌였다.
푸틴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그는 과거 암 수술설, 파킨슨병 진단설에 시달렸다. 지난해에는 그가 침실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구급요원들로부터 긴급 조치를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크렘린궁이 올해 그의 얼음물 입수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은아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