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했다.”
영화 ‘미나리’(2021년)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사상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77·사진)이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으며 털어놓은 첫마디는 의외였다. 한편으론 아카데미상 수상 당시 “최고만 고집하지 말고 다 같이 ‘최중’이 되면 안 되냐”고 언론에 반문하던 그다운 말이기도 했다. 윤여정은 ‘미나리’ 이후 밀려들어오는 대본에 감사함을 느끼기보단 씁쓸했다고 했다. “여기 (배우로) 쭉 있었지만 주인공 역할이 들어오는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갑자기 나를 주연으로 섭외하는 걸 보면서 좀 씁쓸했죠. 사람들이 이렇게 간사한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 그가 ‘미나리’ 이후 처음 선택한 영화 ‘도그데이즈’가 다음 달 7일 개봉한다. 궂은 영화판에서 무려 19년을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쉰이 다 돼서야 느지막이 첫 영화를 찍게 된 김덕민 감독의 데뷔작이다.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여정은 김 감독을 친근하게 ‘덕민이’라 부르며 힘을 실어줬다. 두 사람은 이전에 한 영화 촬영장에서 푸대접받으며 고락을 함께한 사이다. “덕민이가 입봉(감독 데뷔) 할 때 나를 필요로 한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주 많은 사람도 많고 예쁜 사람도 많지만 결국 남는 건 성품이라고 생각해요. 김덕민의 인품을 보고 영화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으로 얽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작품이다. 윤여정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지만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은 외국에 보내 큰 집에서 쓸쓸하게 지내는 민서 역을 맡았다. 그의 곁을 지키는 건 반려견 ‘완다’뿐이다. 실제 윤여정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영화 속 민서는 당초 시나리오에서 배역 이름이 ‘윤여정’이었다. 김 감독이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윤여정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써 내려갔다.
제작비 수백억 원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만큼 규모가 커진 한국 콘텐츠 업계 흐름에 대해 윤여정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게(어떤 한 장르 영화가) 잘됐다고 해서 그것만 만들고 한국 영화가 너무 몸집을 키우는 것 같다. 포장지인 홍보비에 돈을 쓰기보다는 내용을 더 알차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도그데이즈’는 100억 원이 들지 않은 중·저예산 영화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해도 불가사의했다”고 했다. 상을 탔지만 인터뷰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산다는 게 불가사의고 인생은 전위예술이자 영원한 미완성의 실험”이라며 “나도 완성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언제나 잘 안 된다. ‘존경한다’는 말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제일 행복하게 죽는 게 자기가 하던 일을 하다 죽는 거래요. 제 일상인 배우를 하다 죽으면 제일 잘 살다 가는 거겠죠. 영옥 언니(배우 김영옥)가 제 롤모델이에요. 저보다 열 살 많은데 아직도 일하고 있다는 건 너무 대단하잖아요? 지금도 매 순간 절실하게 연기하려고 애씁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