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24일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공연장에서 일본인 배우들이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자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무대의 커튼이 내려가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각본과 연출, 배우를 모두 일본인이 맡은 연극 ‘봉선화Ⅲ’이 성황리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봉선화Ⅲ은 일제강점기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인권 유린 실태와 40여 년에 걸친 인권 회복 운동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연극이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고야시민연극단이 일본 사회에 근로정신대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인권 회복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2003년 제작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1999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후 법정 투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번 봉선화Ⅲ은 세 번째 공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3년 일본 나고야에서 초연됐고, 2022년 나고야에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일본 밖에서 공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출연 배우 23명 중 대다수는 학생이나 직장인, 퇴직자 등 평범한 일본 시민이다. 공연단 항공료 등은 모두 자비로 마련했다.
이에 대공연장 600여 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소녀들이 강제노동을 하다 숨죽이며 노래를 부르거나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겼을 때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자 눈물을 훔쳤다. 피해자인 정신영 할머니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연극을 연출한 나카 도시오 감독은 “첫 공연을 했던 2003년 당시에는 배우로 출연했고 연극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해 중요함을 느끼고 감독을 맡게 됐다”며 “배우들이 아리랑을 유창하게 부를 수 있었던 건 일본에서 재일교포에게 배우고 연습한 결과”라고 말했다.
원고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은 무토 요코 씨는 2003년 첫 작품 봉선화에서 양 할머니를 꾀어 일본 군수공장에 가게 했던 담임교사 역할을 맡으면서 근로정신대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무토 씨는 “2003년 공연에서 담임교사 역할을 맡았는데 연극을 본 양 할머니가 ‘당신(담임교사)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고 말해 항상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 공연에서는 양 할머니 연기를 하면서 ‘(피해자들이) 꼭 사죄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봉선화Ⅲ 출연진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인 25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한 뒤 피해자인 김혜옥 할머니 묘소를 참배했다.
이형주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