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요정’ 박혜정(21·고양시청)은 요즘 차에서 내리기 전 앞머리 볼륨과 입술 색을 한 번 더 점검한다. 지난해 리야드 세계선수권대회와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최중량급(87kg 초과급)에서 연거푸 우승하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받는 일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충북 진천선수촌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여러 차례 팬들이 찾아와 박혜정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박혜정은 “(역도 국가대표) 언니 오빠들이랑 (국제대회 참가를 앞두고) 공항에 있을 때 특히 많이 알아보세요. 역도가 비인기 종목인데 참 감사한 일이죠”라며 “아시안게임 때 인터넷 포털사이트 응원방을 봤는데 ‘역도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것도 정말 좋았어요. 역도는 1kg 차이로 승부가 갈려요. 비슷한 무게를 드는 선수들끼리 경쟁하면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박혜정은 29일 대한체육회 체육상 경기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달 14일에는 대한역도연맹 선정 2023년 최우수 여자 선수상 수상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박혜정은 “우수 선수상은 받은 적이 있는데 최우수 선수상은 처음 받았어요. 초콜릿보다 달콤해요”라며 웃었다.
박혜정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던 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훈련한 덕이다. 박혜정은 지난달 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에도 진천선수촌에서 계속 바벨과 씨름 중이다. 다음 달 31일부터 태국 푸껫에서 국제역도연맹(IWF) 월드컵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은 2024 파리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마지막 대회다.
박혜정은 인상·용상 합계 기록 295kg으로 올림픽 출전 기록 랭킹 2위다. 2021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리원원(24·중국·315kg)만 박혜정보다 기록이 좋다. 그런데도 아직 파리 올림픽 출전을 확정하지 못했다. 현재 3위가 대표팀 선배인 손영희(31·제주도청·291kg)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역도에는 나라마다 체급별로 한 명만 출전할 수 있고 출전 자격은 최고 기록으로 정한다. 손영희가 이번 월드컵에서 296kg 이상을 들었는데 박혜정이 그 이상을 들지 못한다면 손영희가 이 체급 한국 대표로 파리 올림픽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박혜정은 원래 손영희의 대각선 자리에서 훈련했지만 최근 자리를 옮겼다. 박혜정은 “영희 언니는 벌써 무거운 중량을 들고 있어요. 저는 가벼운 무게를 많이 들면서 밑바닥부터 다시 하고 있고요. 언니를 보면 저도 모르게 조급해져서 언니가 안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달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 챔피언까지 오른 선수가 이런 요청까지 한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박혜정은 “자신감이 조금만 넘어가면 거만함이 될 수 있어요. 저를 최대한 낮추고 (언니와) 서로 배려하면서 존중하고 배우려 해요”라고 했다.
박혜정은 “사실 지난해 세계선수권을 이틀 앞두고 허리를 삐끗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고작 이것 때문에 대회를 못 뛰나 싶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그전에 꾸준하게 채워둔 게 있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박혜정은 요즘 하는 ‘횟수 운동’을 “피아노로 따지면 (연주 테크닉 연습 교재인) ‘아농’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저도 사람이라 10번씩 반복해야 하는 걸 한두 번만 하고 넘어가고 싶어요. 초등학교 때 아농 (반복) 횟수 채우는 게 귀찮아 1년도 못 배우고 합기도로 옮겼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만히 못 있는 아이여서(웃음).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져야 실전 컨디션이 올라오더라고요. 파리에 가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횟수를 채워야 해요.”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