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장비업계 ‘빅4’의 국내 특허 등록 건수가 최근 4년 사이 2배 이상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등록한 특허를 무기 삼아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특허 분쟁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장비 분야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견·중소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장비업계는 글로벌 선두업체들의 특허 공습에 성장의 싹이 꺾이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동아일보가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해외 반도체 기업의 국내 특허 등록 현황에 따르면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 네덜란드 ASML, 미국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장비 1∼4위 업체의 특허 등록 건수는 2019년 585건에서 지난해 1266건으로 116.4% 급증했다. 이들 기업은 최근 3년간 매년 총 1000건 넘게 국내에 특허를 등록하고 있다. 한 특허 전문 변호사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의 특허를 피해 제품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 등록이 많아질수록 국내 경쟁사들과의 특허 분쟁 소지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램 리서치는 현재 최소 2건의 특허 소송을 국내 기업과 진행 중이다. 글로벌 10대 장비기업 중 하나인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도 2월 총 4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해외 거대 장비사는 매출이 한국 업체보다 많게는 수천 배 커 ‘글로벌 골리앗과 국내 다윗의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한국 기업들이 사업 수립 단계부터 특허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해주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독자 기술력을 갖추도록 육성책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