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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 “한국 애틋해 국적 안바꿔… 뼈 한조각 부산 앞바다에 뿌려달라”

조치훈 “한국 애틋해 국적 안바꿔… 뼈 한조각 부산 앞바다에 뿌려달라”

Posted May. 29, 2024 08:32,   

Updated May. 29, 20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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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슬픈 역사를 짊어졌던 한국이 너무도 애틋해 국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본 바둑 역사상 최다 타이틀(76개)을 획득한 ‘바둑 황제’ 조치훈 9단(67)이 숱한 귀화 권유에도 한국 국적을 지금껏 지켜온 이유를 털어놨다.

조 9단은 이달 초부터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나의 이력서’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해당 코너에서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이는 모두 일본 국적”이라며 “나 자신도 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일본기원 등에서도 여러 차례 귀화를 권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 9단은 고국에 대한 사랑으로 한국 국적을 지키며 한국 이름으로 줄곧 활동했다. 다만 그는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이 묻힐 묘는 일본에 쓸 계획이라고 한다. “명예와 부를 안겨준 (일본에) 감사한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뼈 한 조각은 (고향인) 부산 앞바다에 뿌려주면 고맙겠다”고도 했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조 9단은 6세 때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1968년 11세에 사상 최연소 프로바둑 기사로 입단해 최연소 9단(24세), 대삼관(大三冠·한 해에 기세이·메이진·혼인보 3대 타이틀 우승), 혼인보전 10연패 등 경이적 기록으로 일본 바둑 역사를 썼다. 지난해 12월에 일본 프로바둑 사상 첫 1600승을 이루며 건재를 과시했다.

1986년 ‘휠체어 대국’은 조 9단의 바둑 인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승부였다. 교통사고로 전치 3개월 중상을 입고서도 “목숨을 걸고 둔다”며 휠체어에 앉아 대국을 벌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부인의 임종을 지키려 기권패를 감수하며 결승전을 포기하기도 했다. 조 9단은 “38년 남짓 결혼 생활을 하며, 타이틀을 딴 뒤 숙소에서 전화하면 아내가 ‘잘했다’고 말해줬다”며 “이 말을 듣고 싶어 열심히 바둑을 뒀다”고 회고했다.

일본 정부는 스포츠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인 자수포장(紫綬褒章)을 2019년 조 9단에게 수여했다. 그는 “각별한 생각이 들었다”며 “일본에 사는 한국인에게 격려가 된다면 기쁠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조 9단은 앞으로도 현역 생활을 꾸준히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600승을 거둔 뒤 “대국에 임하는 긴장감을 갖고 있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선 “매일 바둑 공부를 한다. 대국에서 비참하게 지는 건 괴롭다”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야말로 고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양환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