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훈련병 사망, ‘女중대장’이 본질인가

Posted June. 03, 2024 08:36,   

Updated June. 03, 2024 08:36

日本語

한 육군 훈련병이 지난달 23일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이틀 후 사망했다. 간호사를 꿈꿨던 이 훈련병은 훈련 당시 입소한 지 9일밖에 안 된 상태였다. 그런데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1시간 넘게 팔굽혀펴기와 선착순 달리기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훈련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병원에 이송됐을 땐 근육이 괴사해 있었다고 한다. 그 독성 물질이 일으킨 패혈성 쇼크가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

규정 위반이 명백하다. 육군 규정에는 군기 교육이 가혹행위로 변질하지 않도록 “인권침해의 소지가 없도록 특별히 주의하라”고 명기돼 있다. 구두 교육을 했는데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 때에만 훈련병의 확인서를 받은 뒤 실시할 수 있다. 특히 훈련병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야 하고, 훈련이 1시간이 넘으면 10분 이상 쉬게 해줘야 한다. 법원은 부하 장교에게 1시간 넘게 차렷 자세를 시킨 한 대대장의 해임이 정당했다며 이 지시를 ‘가혹행위’라고 선고했다. 이 판결이 나온 게 4년 전이다.

이번 사건에서 훈련을 지시한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이 민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군은 이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봤다. 해당 부대를 거친 병사 사이에선 이전에도 가혹한 군기 훈련이 자행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은 이번 사건뿐 아니라 예전에도 규정을 어긴 군기 훈련이 상습적으로 벌어졌는지, 이를 예방하고 감시할 부대의 지휘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군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한 원인 분석과 해법 모색이 필요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온라인에서 가장 강력하게 떠오른 것은 ‘이성 혐오’라는 오물이었다. 훈련을 지시한 중대장이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남성 위주 사이트에서는 해당 중대장의 실명과 출신 대학을 조리돌리듯 공유하는 글이 수천 건 올라왔다. “체력의 한계에 무지한 여성이 지휘관을 맡아서 벌어진 일”이라거나 “여군이라서 남성 훈련병의 기를 꺾기 위해 무리한 훈련을 시켰다”는 억측이 빗발쳤다. 중대장의 사진을 올리고 “쇼트커트를 한 거 보니 남성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 같다”고 적은 글에 ‘좋아요’가 수백 개 달렸다.

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훈련병의 죽음을 모독하는 행위다. 가해자의 성별이 문제였다면, 최근 10년간(2013∼2022년) 군기 사고로 숨진 655명의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체력의 한계에 대한 무지나 악의(惡意)로 이런 일을 벌였다면 그런 이에게 군기 훈련 권한을 부여하고 방치한 군의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피의자들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수사기관은 “사실상 국가 권력에 의한 ‘고문치사’ 아니냐”는 지적을 귀담아듣고 철저히 수사해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한두 명을 악마로 몰고 비난하는 데 매몰되면 ‘정의가 구현됐다’는 후련한 착각 말고는 얻을 게 없다. 이성 혐오자는 그저 ‘이때다’ 싶어 분풀이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사건을 계기로 일어나는 국민적인 관심과 공분은 매우 한정적인 ‘사회적 자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슈에 밀려 무관심의 그늘로 사라지기 일쑤다.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된 대책을 내게 하려면 특정인의 성별이나 나이, 인종을 근거로 그 집단을 매도하는 데 치중할 게 아니라 시스템에서 망가진 부위가 어디였는지 정확히 짚어야 한다. 그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