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직업은 다 이유가 있나….”
2006년 만화가 김규삼은 암담했다. 그의 만화를 실어주던 잡지에서도 잘리고, 만화가의 길은 끝나 보였다. 다니던 대학까지 중퇴하고 20대 청춘을 바쳤던 세월이 헛되게 느껴졌다. 스물아홉 살이던 그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기웃댔다.
그 무렵이었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3년 차 네이버 사원이 전화해 인터넷에 만화를 그려 달라고 했다. 김 작가는 “만화를 포기하려고 했을 때, 웹툰이라는 길이 열린 것”이라며 “그때 출세작이 된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18년이 지난 이달 27일(현지 시간) 김 작가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섰다. 한국 웹툰 1세대 대표주자들인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와 ‘노블레스’ 손제호 작가도 함께였다. 이날 네이버웹툰은 나스닥 상장을 기념해 현지에서 팬 사인회를 개최했다.
이날 나스닥 상장 타종 행사엔 당시 김 작가에게 전화했던 3년 차 사원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참석했다. 네이버웹툰 북미법인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첫날인 이날 공모가보다 9.5% 높은 23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은 약 29억 달러(약 4조24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나스닥 빌딩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들은 해외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모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조 작가는 “지금 웹툰이 성공했을 때를 가장한 시트콤을 찍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손 작가도 “처음엔 정말 작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글로벌 서비스가 되다니 얼떨떨하다”고 맞장구쳤다.
작가들은 ‘정통 만화가’들이 “그게 만화냐”라고 경시했던 웹툰 초창기를 떠올리며 20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작가는 “예전에는 작가들이 수입 때문에 만화계를 떠났다”며 “이제는 의사도 관두고 웹툰을 한다는 말에 위상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국 인기 작가들의 웹툰은 드라마나 영화, 게임 등으로 지식재산권(IP)이 확장되며 수익이 급등하는 추세다. 김 작가의 ‘쌉니다 천리마마트’와 ‘비질란테’, 조 작가의 ‘마음의 소리’ 등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작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웹툰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로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조 작가는 “한국에서 이미 굉장한 경쟁을 해서 양질의 작품이 살아남았을 때 해외에서 관심을 가진 덕”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