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가사도 거의 다 외웠는데 아쉽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따서 꼭 애국가 부르겠다.”
30일 파리 올림픽 여자 57㎏급 결승전을 마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온 허미미(22)는 담담했다. 허미미는 정규경기 4분과 골든스코어(연장전)까지 모두 6분35초간의 결승전에서 손에 닿을 듯했던 금메달을 놓쳤다. 허미미는 “아직 멀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 뒤) 다음 올림픽에는 나이도 더 먹고 하니까 잠재력을 키워서 꼭 금메달 따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제일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걸 보고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태극마크를 단 허미미가 파리 올림픽 한국 유도 첫 메달을 따냈다. 허미미는 30일 프랑스 파리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열린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캐나다 크리스타 데구치(29)와 골든스코어 접전 끝에 지도 3개를 받아 반칙패하며 은메달을 따냈다. 이 체급 세계랭킹 1위 데구치는 3위 허미미가 올 5월 국제유도연맹(IJF)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결승에서 꺾었던 상대다. 허미미는 한국 여자 유도 선수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보경(여자 48㎏급) 이후 8년 만에 메달을 목에 걸었다. 허미미는 앞서 준결승에서는 2016년 리우 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브라질의 하파엘라 실바(32)를 절반승으로 제압했다.
한국 국적의 아버지와 일본 국적의 어머니를 둔 허미미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유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유도를 시작했다. 2017년 일본 전국중학교유도대회에서 우승했고, 2019년에는 한국 전국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재일교포 선수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유도 천재’로 주목받던 허미미는 2021년 세상을 떠나기 전 할머니가 남긴 “미미가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에 따라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허미미는 지난해 자신의 생일(12월 19일)을 앞두고는 일본 국적도 포기했다.
첫 올림픽을 마친 허미미가 떠올린 얼굴도 할머니였다. 허미미는 “할머니를 믿고 존경했기에 그 뜻을 따라 한국행을 결정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잘했다,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실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실업팀 경북체육회에 입단한 허미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1857∼1920)의 5대손임을 알게 됐다. 여동생 허미오(20)도 현재 경북체육회에서 뛰고 있다. 독특한 이력에 허미미는 이날 일본 취재진의 집중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일본 사이타마에 사는 허미미는 현재 국내 주거지가 없어 대회가 있을 때마다 진천선수촌이나 호텔을 오가며 생활했다. 일본 와세다대 스포츠과학부 4학년이기도 한 허미미는 틈틈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학업도 병행했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서 하는 새벽 훈련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스스로를 치열하게 몰아붙였던 허미미는 그러나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더 살폈다. 올림픽 뒤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허미미는 “파리까지 같이 와준 훈련파트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를 사주겠다”며 웃었다.
강홍구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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