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소를 데려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매년 4만∼6만 마리의 소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주로 두세 살의 암소가 건너가 4, 5년간 농작업 등에 투입된 후 도살돼 소고기로 소비됐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전반까지 일제의 소 사육 두수 중 조선 소의 비율이 15%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기간 조선에 남은 소는 ‘왜소’해졌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조선가축위생통계’에 따르면 1930년 224kg이었던 조선 암소의 체중은 1942년 185kg으로 17%가량 감소했다. 수소는 같은 기간 377kg에서 277kg으로 27%가량 줄었다.
이런 내용은 임채성 일본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55·사진)가 지난달 22일 펴낸 ‘음식조선’(돌베개)에 담긴 내용. 임 교수는 지난달 30일 통화에서 “한국 ‘소’는 거친 환경 속에서 일을 잘하고 먹을 것을 가리지도 않아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다. 일본에 좋은 소들이 넘어가면서 정작 조선 소의 체격이 열등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일제강점기 당시 식료품의 생산·유통·소비를 통해 조선과 일본 양국의 식문화 변화를 살펴본다. 2019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고 올해 한국어판이 나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 재래의 것들이 일본으로 수출되거나 조선에는 없었던 새로운 식료가 도입되는 과정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식민지 시기 기존 경제사의 분석 범위는 대개 쌀과 같은 일부 식량에 한정됐지만 이 책에서는 우유, 사과, 소고기, 홍삼 등 9가지 식재료를 폭넓게 다룬다. 임 교수는 “최근 세계에서 인기 있는 ‘K푸드’의 전사(前史) 같은 책”이라고 했다.
홍옥과 국광 등 서양 사과가 조선으로 유입된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산과 경쟁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임 교수는 “특히 일본과 가까운 경상도를 통해 건너간 사과는 일본 아오모리 사과와 경쟁했다”며 “제국주의 시대였지만 우리 수출품이 일본에 변화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오사카 시장에서 조선 사과가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한일의 음식 교류는 평등하지 않았다. 양질의 식재료가 일본으로 수탈되면서 조선인의 영양 상태는 나빠졌다. 한국인 1인당 열량공급지수(곡물 및 감자류 기준)는 1940년대 중반이 되자 20년 전 기준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도 1∼1.5cm 줄었다. 임 교수는 “당시 한반도 인구는 증가했는데 이에 걸맞게 식료 공급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다 보니 영양 상태가 많이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