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둥과 조약돌 모양의 벤치가 진지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리움미술관 로비 한쪽 벽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이 스크린에서 2021년부터 영상 작품을 전시하는 ‘월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공간을 위해 미술관 의뢰로 제작한 작품이 지난달 18일 공개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듀오 폴린 부드리, 레나테 로렌츠의 작품 ‘초상’이다.
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미술관 내부 인테리어에 맞춰 검은 인조 가죽 커튼이 드리워진 공간을 무대로 한다. 여기에 작가들과 가깝게 교류해 온 안무가, 미술가, 음악가 등 8명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해 카메라를 말없이 응시한다. 멈춰 있는 그림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초상으로, 큰 화면에서 사람들의 얼굴 표정, 몸짓 등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관객은 스크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들과 ‘아이 컨택’을 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던지거나, 밝은 전구를 온몸에 두르고, 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각자의 개성을 표현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제스처나 옷차림이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걸 말해줄 때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작가는 “섣부른 말로 누군가를 규정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는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전했다.
두 작가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는데, 이때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거꾸로 재생한 장면을 큰 화면에 담아 주목을 받았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두 작가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을 제작해 왔고, 이런 배경에서 다양한 관객이 오고 가는 미술관 로비에 어울리는 작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 23일까지.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