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직원 이모 씨(38)는 최근 대출 상담사를 통해 저축은행의 자동차담보대출(차담대) 상담을 받았다.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다 소진한 탓에 생활비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이 씨는 캐피털 회사로부터 1500만 원의 차담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올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교과외 활동, 학원비 등의 지출이 단기에 부쩍 늘어났다”며 “저축은행에서 ‘담보 없으면 대출을 안 해준다’고 해서 차담대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차담대 등 불황형 대출 폭증
이 씨의 사례처럼 차담대 수요가 몰리는 것은 소득 조건, 신용점수 등과 상관없이 대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대출보다 한도가 많이 나오지만 그만큼 금리 부담도 높다. 6월 말 기준 저축은행이 신규로 취급한 차담대 금리는 최저 연 9.80%, 최대 19.99%였다.
대출 비교 플랫폼 핀다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차담대 한도를 조회한 고객 중에선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각각 30.2%, 37%를 차지했다. 서관수 핀다 파트너십 총괄 이사는 “그만큼 한국 경제의 허리 계층을 차지하는 3040세대의 급전 수요가 많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차담대와 함께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상품들의 잔액들은 하나같이 역대 최고치에 가까운 수준이다. 롯데, BC, 삼성, 신한, 우리, 하나, 현대, KB국민, NH농협 등 국내 주요 카드사 9곳의 카드론 잔액은 6월 말 기준 40조6059억 원이었다.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시점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예금담보대출도 4조7831억 원으로 3년 전 대비 25% 증가했다. 본인의 보험계약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보험계약대출 잔액도 5월 말 기준 54조1703억 원으로 3년 전 대비 12% 늘어났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캐피털 등 2금융권이 연체 부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이유로 신용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불황형 대출 잔액이 폭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2금융권 입장에선 중저신용자 대출을 추가로 취급하는 게 향후 연체율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2금융권은 서민형 대출을 외면한 채 담보 대출과 우량 신용자 대출에만 목매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민들이 돈 빌릴 곳이 없으니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등에 이어 자동차까지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는 것”이라며 “중저신용자들이 한계 상황에 몰렸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저신용자 불법 사금융 의존 불가피
일을 잠시 쉬고 있는 노모 씨(42)는 카드값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릴 곳을 찾고 있지만 대출 한도가 꽉 차 사금융 업체와의 상담을 고민 중이다. 노 씨는 “사금융 이자율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는데, 카드값을 변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포털 카페 검색, 전화 문의 등을 통해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 보험 자동차 등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이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노 씨처럼 담보를 추가로 제공할 여력이 없거나, 대출 한도가 꽉 찬 서민들은 급전을 마련할 방법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법정 최고금리를 순차적으로 인하했지만, 대부업체들이 연체률 등을 이유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대부업 이용자 수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 수는 112만 명이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72만8000명에 불과했다. 금융 당국은 러시앤캐시의 사업 철수가 이용자 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체들이 저신용자 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노출이 심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2021년 이후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유지하고 있지만 정책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취약계층을 더 불법 사금융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최소 24.6%로 올려 등록 대부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