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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선 대한의 귀신될 것”… 일제에 뺏긴 의병문서 110년만의 귀환

“죽어선 대한의 귀신될 것”… 일제에 뺏긴 의병문서 110년만의 귀환

Posted August. 15, 2024 09:14,   

Updated August. 15, 20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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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우가 여기 있지 않은데 (중략) 눈물을 흘리다가 저도 모르게 어지러워 땅에 쓰러졌습니다. 분하고 원통하여 죽고 싶은데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의병장 허겸(1851∼1939)은 역시 의병장이자 동생인 허위(1855∼1908)가 일제에 체포돼 목숨이 위태롭게 된 슬픔을 이렇게 편지에 남겼다. 이들 형제는 1907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된 의병인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했다. 허겸은 동생을 잃을 위기에도 의연했다. 동료 의병들에게 보낸 편지에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길 전보다 더한 후에야 국권을 회복하고(하략)”라고 전한다. 하지만 동생 허위는 체포 넉 달 만에 결국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약 110년 전 일제 헌병경찰에게 뺏겼던 항일 의병들의 기록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제79회 광복절을 앞둔 1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해외에서 환수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13건과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1851년부터 1909년까지 작성된 문서 13건이다.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 등의 글, 의병장 최익현(1833∼1907)의 서신 등이 포함됐다. 이 문서들은 두 개의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첫머리에 쓴 글을 볼 때 당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아쿠다카와 나가하루(芥川長治)가 문서 수집 후 지금 형태로 만들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아쿠다카와는 각 두루마리에 ‘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 ‘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檄文)’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일제의 입수 경위가 명확하게 기록된 데다 당대 일제의 의병 탄압의 실상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의병 전문가인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강년과 허위 등 대한민국 건국 훈장 중 최고 등급을 받은 불세출의 의병장들이 실제로 생산한 공문서들을 확인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고 했다.

문서 곳곳에는 어려움에도 기개를 꺾지 않는 의병장들의 모습이 생생히 나타난다. “살아서는 대한의 백성이 될 것이요, 죽어서는 대한의 귀신이 될 것이다.” 1909년 2월 의병장 윤인순은 이런 고시를 남긴다. 1908년 5월 13일 일제에 체포되던 당일까지 “합진(부대를 합쳐 진을 침)해 군대의 성세를 떨치겠다”고 다짐하는 허위의 서신도 가슴을 울린다. 또 군수 물자 부족, 의병 간 갈등 등 당시 의병들의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함께 공개된 ‘한일관계사료집’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편찬한 네 권짜리 역사서. 삼국시대부터 3·1운동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일본 침략을 고발했다. 총 100질이 제작됐지만 현재 완본은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 등 2질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세 번째 완본이 공개된 것이다. 또한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이 시를 나무판에 새긴 조현묘각운도 함께 공개됐다. 국가유산청 등은 한말 의병 관련 문서들은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구입했고, 나머지 2건은 각각 미국과 일본 개인 소장자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