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진료 후 심장 수술 날짜가 1, 2주 만에 잡혔을 텐데 이젠 한두 달 대기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연말로 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12일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정인석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심장 수술은 급하지 않은 게 없는데 수술 날짜를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를 보면 애가 타고 면목도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교수는 이날도 중환자실에 입원한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갑작스러운 출혈을 치료하던 중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이번 사태로 전공의 3명 중 2명이 사직한 탓에 정 교수는 반년째 주 100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서 ‘온콜(on-call·연락 대기)’ 상태로 지내고 있다.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정 교수의 휴대전화는 그를 찾는 전화벨이 연이어 울렸다. 그는 대화를 마치자마자 “폐렴으로 입원한 2세 아이를 진료하러 가야 한다”며 소아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2월 19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병원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났다. 다음 달부터 대입 수시전형이 시작되는 등 입시는 본격화되고 있지만 의정 갈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비상진료 체계가 이어지면서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대 증원 취지와 달리 필수·지방·응급의료의 붕괴가 본격화되며 조만간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심장과 폐를 다루는 심장혈관흉부외과는 근무 강도가 높고 의료소송 위험이 클 뿐 아니라 개원하기도 어려워 대표적 기피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전공의 병원 이탈 전에도 인력난이 심했는데 의료 공백 사태를 거치며 사실상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말 마감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 133명을 모집했지만 심장혈관흉부외과만 유일하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들까지 비수도권 중심으로 병원을 떠나며 진료 시스템 붕괴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조만간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병원에서 흉부외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1970년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아심장 수술 등 흉부외과 내 희귀전공의 경우 조만간 외국에 나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끼리도 갑자기 가족이 아플 때를 대비해 흉부외과 의사를 미리 알아둬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광주=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