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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친 일상, 시인의 눈길 닿으면

Posted August. 17, 2024 08:57,   

Updated August. 17, 202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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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바다 근처에서 적산가옥을 보다 ‘적산’의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본 저자는 놀란다. 적산의 ‘적’은 붉을 적도 쌓을 적도 아닌, 적(敵), 산(産). 적의 재산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적’이라는 적대적인 단어에 담긴 투박함, 무거움, 역사, 증오가 다가오며 적산가옥은 낯설게 느껴진다. “감정도 이해도 기분도 없이 발가벗겨 보여주는 말의 뜻” 때문에 이따금 사전을 찾아보다 진심으로 상처를 받는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말을 다루는 시인인 저자는 이렇게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글로 풀어낸다. 누구에게나 매일 주어지는 ‘새벽’, 마음을 보내는 ‘편지’, 혹은 ‘불면’과 ‘숙면’ 등의 단어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상 깊은 것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나 반려 고양이인 ‘당주’,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일화 등 시인의 개인적 이야기들이다. 당주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며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다가도, 동물들이 말을 해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고양이가 “나는 왜 맨날 싸구려 사료를 먹어야 하지?”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을 하라”라고 한다거나 산책을 못 한 개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투덜대며 인간과의 불화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다.

오랜 기간 아팠던 아버지에 대해서는 짧은 단어 몇 개로 말하고 넘어가 버리고 만다. 작가는 “아버지의 투병기로 장편소설 세 권은 쓸 수 있다”면서도 “지독한 시간을 보낸 사람은 ‘축약하는 버릇’으로 자신을 보호”한다고 말한다. 어느 날 거울로 보이는 자신의 흰머리 한 가닥을 보고는 “삶이 내게 준 한 가닥 스크래치!”라고 외마디 내지르는 저자만의 유쾌함은 인생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아픔을 버텨내는 힘이다.

책 속 글들은 ‘다락방에서 생각하기’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먼저 연재가 됐다. 세상과 떨어진 채 아늑한 장소에 있다고 상상하며 써 내려간 글들로, 바쁘고 혼란한 일상에 잠시 멈추고 마음을 돌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