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1시 16분. 서울 중구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운영하는 ‘수도권 응급의료상황실’에 “40대 장 허혈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복통으로 경기 의정부시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장 주변 혈관이 막힌 것이 발견된 환자였다. 전원(轉院)을 요청한 병원은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장 괴사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 인근 대학병원 5곳에 의뢰했지만 모두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상황실 관계자는 서울 대형병원에 전화를 9번이나 돌린 끝에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의료공백이 6개월째 이어지면서 상당수 대형병원의 응급실 운영이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충북대병원 등 지역 거점 대학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일시 중단해 권역 밖으로 장거리 이송되는 경우도 늘고 있고, 응급 치료를 못 받아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추석 연휴 즈음에 응급실 대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료공백 후 273명은 이송 병원 못 찾아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시도별 응급의료상황실 전원 현황’에 따르면 올 3∼7월 접수된 전원 요청 5201건 중 273건(5.2%)은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환자 바이탈(혈압 등 생체 신호)이 불안정해 장거리 이송이 어려운 중증환자인데 인근 병원 중에는 갈 곳이 없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의 최종 치료를 책임져야 할 거점 대학병원의 역량이 한계에 달해 권역 밖으로 장거리 이송되는 환자도 상당수다. 올 3∼7월 부산에서 발생한 전원 요청 환자 259명 중 부산 시내 병원에서 수용한 환자는 153명(59.1%)에 불과했다. 77명(29.8%)은 울산과 경남으로, 29명은 그 밖의 지역으로 이송됐다. 올 4월 부산에서 복합골절과 혈관 손상이 발생한 29세 환자의 경우 19곳을 수소문한 끝에 경기 남부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24시간 365일 가동돼야 할 응급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충북대병원은 14일 오후∼15일 오전 분만, 심근경색 등 14가지 중증 응급질환 진료를 중단했다. 세종충남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부분 폐쇄하고 있다. 충청권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 사이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고용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공백 사태 전에는 전문의 1명, 레지던트 2명, 인턴 2명이 응급실 당직을 섰는데 지금은 전문의 1명만 근무 중”이라며 “의사 수는 5분의 1로 줄었는데 환자는 기존의 절반 이상을 받으니 살릴 기회를 놓치는 환자가 생긴다”고 말했다.
●“수도권 병원도 곧 한계 맞을 것” 응급의료 공백은 응급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응급실은 환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 후 다른 진료과로 넘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이탈 이후 각 진료과의 환자 수용 능력이 급감하면서 거의 모든 과에서 환자 표류가 발생하고 있다. 대전에서 24시간 신경과 진료가 가능한 유일한 병원이 충남대병원인데 15일 신경과 교수가 병가로 당직을 못 서자 관련 환자 이송이 불가능해진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응급의료 전문의들은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는 경기 남부 대형병원도 조만간 응급실 운영이 한계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각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운영 역량이 한계에 도달하며 2차 병원으로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며 “응급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에 응급실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성민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