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는 약간의 탄광을 보유한 것 외에는 특별하지 않은 조용한 도시였다. 1943년 7월 5일부터 8월 23일 사이에 쿠르스크 돌출부를 두고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혈전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을 곳이다. 그러나 독일군 80만 명, 소련군 200만 명이 동원된 쿠르스크의 혈전으로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특히 대규모 전차전은 1500대가 넘는 전차들이 서로 뒤엉켜 백병전을 벌인 혈투로, 전차전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장렬했던 그리고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전투로 알려져 있다. 전차 백병전이란 생소한 단어지만, 말 그대로 전차들끼리 근접 혈투를 벌이는 전투다. 포탄을 발사할 수 없거나 불붙은 전차들은 적의 전차에 육탄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한 세대 지나 로봇이 전투를 대신 하게 된다면 우린 이런 광경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쟁사 마니아에게나 기억되던 지역이 갑자기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다시 전쟁 때문이다. 이번의 쿠르스크 전역 역시 극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투가 될 것 같다.
그야말로 치킨 게임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정예 전력을 투입했고, 러시아의 2선 부대로는 감당이 안 된다. 러시아는 동부전선의 주력을 빼 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사이에 우크라이나군은 방어 진형을 확보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아니면 동부전선에서 모험을 벌일 수도 있다. 10월까지 버티면 가을비 맞은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가 된다. 쿠르스크는 평원이라 방어에 불리한 곳 같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공격 부대가 완전히 노출되고 약간의 구릉, 숲, 도랑이 훌륭한 방어 지형이 된다. 1943년 독일군은 충분히 요새화된 쿠르스크 돌출부에 뛰어들었다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