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2일 기준금리를 3.50%로 유지하면서 역대 최장기간 동결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해 2월 금리 인상을 멈춘 이후 13차례(약 1년 7개월) 연속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이미 금리를 내렸거나 인하를 사실상 예고한 상태지만 한국만 불어나는 가계빚에 손발이 묶여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물가 수준만 보면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금리 동결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가 둔화하고 물가상승률도 내리는 상황만 보면 금리를 인하하는 게 맞지만, 집값과 가계빚 등 금융 불안이 심각해 현재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의 금리 동결 행진은 속속 금리 인하를 개시하는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는 상반된 흐름이다. 앞서 캐나다가 주요국 중 최초로 올 6월부터 금리를 두 번 연속 낮췄고 6월에 금리를 한 차례 내린 유럽중앙은행(ECB)은 9월 추가 인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또 중국도 지난달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낮췄고, 영국 역시 이달 초 4년 만에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글로벌 통화정책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미국도 다음 달 인하가 확실시된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1일(현지 시간) 공개한 7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19명의 참석자 중 대다수는 9월 금리 인하가 적절할 것으로 봤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한 번에 0.5%포인트를 내리는 ‘빅컷’을 점치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이날 한은의 금리 동결 결정에 대통령실은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며 이례적으로 별도 입장을 내놨다.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이날 당장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애초에 가계부채 및 집값 관리에 실패한 것이 지금 한은의 손발을 꽁꽁 묶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 와서 내수를 살리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는 불붙은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는 6월 말 현재 1896조 원으로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부동산 가격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승해 서울 아파트값은 22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