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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전문성 위기 초래한 김건희 여사 조사 후유증

검찰의 전문성 위기 초래한 김건희 여사 조사 후유증

Posted September. 02, 2024 09:25,   

Updated September. 02, 20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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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논란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 이후 10년간 정부 차원에서 발족한 공적 조사기구만 특별조사위원회(2015년 출범), 선체조사위원회(2017년),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2019년)였다. 특히 조선해양, 선박공학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한 선조위와 사참위 활동 기간에는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컸다.

위원회가 진행될수록 잠수함 같은 외부 충돌에 의한 충돌설(외력설)보다는 선박 자체의 결함(내인설)에 무게를 둔 과학적인 결론이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문가들은 위원회를 떠나갔다. “박근혜 정부 때와 같은 결론”이라는 사회적 압력을 견디지 못한 탓이 크다. 지금껏 각종 위원회가 내놓은 결론은 “선체 결함일 수도, 외부 충돌일 수도” 같은 두루뭉술한 내용뿐이다. 세월호 관련 각종 음모론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들이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모습이다. 전문가의 위기는 전문성을 위협하는 각종 사회적 압력에 더해 전문가들 스스로 전문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가 없을 때 발생한다. 한국만의 특징도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톰 니콜스는 저서 ‘전문가와 강적들’(2017년)을 통해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미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모습인 듯하다.

한국 사회에선 오랫동안 법률가와 의료인이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으로 여겨졌다. 역설적이게도 최근 가장 위기를 맞은 두 집단이다. 취재를 담당하는 법조계를 들여다보면 어느 때보다 법조인들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형사사법 분야, 검찰의 위기는 임계치에 이른 듯한 모습도 종종 목격한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김건희 여사의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 갈등이다. 김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대면 조사하면서 불거진 이 논란은 디올백 사건 처분을 앞두고, 검찰총장이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카드를 꺼내 들면서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원석 총장은 “수사팀의 증거판단, 법리해석이 충실히 이뤄졌다”면서도 “공정성을 제고하고, 더 이상 논란이 남지 않도록 매듭짓겠다”며 수심위를 소집했다.

검찰이 사회적 논란을 부르는 수사를 할 때마다 자주 밝히는 문구가 있다. “오직 증거가 가리키는 대로” “법리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 등의 말이다. 정작 증거와 법리엔 문제가 없다면서 김 여사 사건은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김 여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자신들의 법률적 전문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공정할 의무에 대한 전문성을 의심받았다는 점이다. 권력자의 가족은 검찰청사도 아닌 곳에서, 외부의 시선을 걱정할 것 없이 조사받을 수 있게 하니 누구나 같은 요구를 해도 검찰은 앞으로 할 말이 없게 됐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언을, ‘공정한 수사’라는 전문성을 잃어버린 혹독한 결과나 다름없는 것이다.

형사사법 전문가, 검찰을 위협하는 ‘강적들’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검찰 조직 스스로 되새겨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