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17년째 신작을 내지 못하고 외로움에 빠져든 교수 ‘벨라’. 그녀를 존경하는 학생 ‘크리스토퍼’는 매일 같은 시간에 벨라를 찾아와 자신이 위태로이 쓴 소설을 들려준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마음속 “벌거벗은 나무가 있는 겨울 공원” 같은 고독까지 서로 치유해 줄 수 있을까.<br><br> 다음 달 2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줄거리다. 위암에 걸린 예일대 영문학부 교수 벨라, 명석하지만 무람없는 학생 크리스토퍼가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의 극작가 겸 작사가 박천휴가 대본 윤색에 연출까지 처음 맡았다.<br><br> 등장인물들은 커트 보니것, 오노레 드 발자크 등 유명 소설가들을 끊임없이 거론하며 대화에 입체감을 더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증은 두 주인공이 고독함을 자처하는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상반된 심리를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작품 메시지와 연결하려 했던 점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br><br> 극중 상황과 심리는 벨라의 시점에서 섬세하고 문학적인 대사들로 풀어져 나온다. 벨라는 자신에 대해 “난 녹슨 병따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고학적 유물”이라고 냉소하며 “세월은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갑자기 덮쳐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심경을 “한겨울 따뜻한 비에 녹아버린 눈”에 빗댄 대목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벨라 역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 출연한 서재희가 맡아 담담한 서술자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소화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