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100만 명 이상의 불법이민자를 수용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불법이민자 포용 정책’에 적극적이던 독일이 국경 통제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최근 유럽에서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반이민 정서가 거세진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유럽연합(EU)의 통합을 상징하는 ‘솅겐 조약’이 퇴색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9일 “국경지대 범죄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16일부터 6개월 동안 육상 국경 9곳의 통제를 모두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체코, 폴란드 국경 통제를 강화했던 것에 이어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와 접한 국경도 입국자 검문 강도를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독일의 이러한 방침은 유럽에서 극우세력이 커지며 불법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크게 확산된 탓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에선 20대 시리아 망명 신청인이 흉기 난동을 벌여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달 1일 치러진 튀링겐주와 작센주 지방선거에선 이민자 배척을 정책 기조로 하는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1,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국경 통제 강화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덴마크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인 국제 통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올림픽 전후로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 위협이 커진 영향이 적지 않다.
독일의 이번 조치는 인접국과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게르하르트 카르너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독일 매체 빌트에 “독일이 돌려보낸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즉각 반발했다. 독일의 국경 강화가 오스트리아 불법이민자 증가로 이어질 것을 경계한 것이다.
독일마저 폐쇄적인 국경 통제를 선언하자 EU의 통합을 상징하던 솅겐 조약이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85년 독일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맺은 상호국경개방조약이 출발점인 솅겐 조약은 EU 회원국들이 국경 검문을 철폐하고 자유로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던 EU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