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할 때면 학교, 학원에 못 느꼈던 즐거움을 느껴요.”
고려인 4세 최 알렉산더군(14)은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자에게 말했다. 알렉산더 군은 러시아 출신이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17년 고려인 3세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알렉산더 군은 이달 10∼12일 국제구호단체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주최한 결연아동 축구대회 ‘호프(hope·희망)컵’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여전히 그의 국적은 러시아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기아대책이 2년마다 주최하는 호프컵은 전 세계 결연 아동을 한국으로 초청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다. 알렉산더 군은 이날 열심히 뛰었지만 졌다.
알렉산더 군은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경험하면서 신기한 것들을 보고 싶었다. 축구를 잘하면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축구를 하며 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하이파이브를 할 때 기분이 가장 좋다”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다른 팀 선수들을 보며 멋있다고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충북 청주시 율량동에 정착한 알렉산더 군의 생활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올 3월 알렉산더 군은 길을 걷다 선배 2명과 동급생 1명에게 주먹으로 무작정 얻어 맞았다. 알고보니 학교의 선배들이 싸움을 붙이고 누가 이기는지 돈을 거는 도박과 같은 놀이를 하던 것이었다.
알렉산더 군은 이날 입술과 얼굴을 주먹으로 맞아 엉망이 돼 전치 4주 치료를 받아 치료비만 100만 원 이상 나왔다. 어머니는 병간호 때문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기도 했다. 이후 알렉산더 군은 본인이 원해 다른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알렉산더 군은 현재 자신의 꿈인 축구에만 매진하고 있다. 대회 준비를 위해 합숙을 하며 오후 6시에 저녁을 먹고 오후 11시까지 연습에 몰입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군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진짜 축구 선수처럼 생활해 보니 너무 재밌었다. 열심히 축구를 연습해 멋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며 다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