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간) 볼로미디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제기한 지 9일 뒤인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으로 관련 언급을 내놓았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18일 파병 정황을 발표한 것과 달리, 미국 역시 23일에야 북한의 참전을 공식화했다. 전쟁의 핵심 관련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다소 늦은 시점에 이를 인정하고 나선 것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파병 정황이 담긴 위성)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은 그간 크렘린궁이 “허위 정보”라며 강하게 부인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북한군의 파병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열흘 가까이 시간을 끌다가 태도를 선회한 배경에는 이날 오전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의 공식 비준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 협력이 양국 조약에 기반한 주권 사항이라고 말해 왔다”며 “관련 증거도 다양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더 이상 부인할 필요성이 없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승리를 위해 북한에 대해 견지했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있다”며 “북-러 군사 동맹이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면서 북핵 문제를 두고 서방과 지켜온 최소한의 공조마저 내던지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북한군 파병설을 다소 늦은 시점에 공식화한 건 다음 달 5일 실시되는 대선에 미칠 파장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의 판단은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변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도 즉각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북한군 파병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 향후 전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군의 지휘권이나 파견 인력 수준 등 구체적 상황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 교수는 “(러시아가) 부인하지 않는 것과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은 천양지차”라며 “한국 정보당국이 지나치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신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홍정수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