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가 무서운 진짜 이유
Posted November. 18, 2024 09:15,
Updated November. 18, 2024 09:15
트럼프 2기가 무서운 진짜 이유.
November. 18, 20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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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비자 받고 들어와서 취재하는 것 맞죠?” 지난달 미국 대선 경합주 취재를 위해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찾았을 때 일이다. 사전투표소에서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한참 설명하던 백인 남성이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농담이라기엔 무례하고 장난이라기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자 “물론 B비자 받았겠죠” 하며 멋쩍게 웃었다. 언론인 비자는 B비자가 아닌 I비자다. 하지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겐 B냐 I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현장 취재를 하는 동안 경합주 도처에서 ‘성난 사람들’, 좀 더 정확히는 ‘성난 약자인 백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미국이 아닌 나라를 구분했고,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나눴다. 이들의 분노 포인트를 요약하자면 ‘진짜 약자는 난데, 민주당은 나를 뺀 엉뚱한 사람만 챙긴다’는 것이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내와 함께 투표를 하러 온 한 백인 남성은 “아내의 장애인 보조금은 끊어놓고서 불법 이민자들에겐 이 나라 세금을 퍼주고 있다”며 깊은 분노를 표했다. 챙이 헤져 여기저기 실밥이 튀어나온 모자를 쓴 채였다. 기자에게 비자는 받았냐고 물었던 남성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를 토로하던 그의 안경다리는 스카치테이프로 고정돼 있었다. 이들은 바른말만 하는 민주당을 미워했다.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분명 사전 취재에서 ‘보라색(중립 성향인)’, ‘지지율 박빙’으로 분류된 지역이었는데도 막상 인터뷰를 해보면 10명 중 7, 8명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 심지어 그들은 전혀 ‘샤이’하지 않았다. 이들은 매우 명백하고, 노골적이었으며, 당당했다. 너무 화가 나서 설명하려면 1박 2일이 필요하다는 중년 백인 여성도 있었다. 이런 ‘가난한 백인의 분노’를 민주당이 아닌, 부자 중의 부자인 트럼프 후보가 공감하고 공략했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 대선 결과가 나왔다. 뉴욕에서 10년 넘게 산 한 교민은 앞으로가 두렵다고 했다. 트럼프 1기를 경험한 그는 “내가 아는 미국은 트럼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트럼프 1기가 미국 사회에 남긴 가장 나쁜 유산은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고 차별해도 괜찮다는 문화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8년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이 사는, 진보적 도시인 뉴욕조차 그렇게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고 했다. 2기가 어떨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려면 아직 두 달이 남았지만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최근 성소수자나 히스패닉계에게 ‘추방 대상자에 포함됐다’, ‘재교육 시설 입소 대상’ 등의 메시지가 뿌려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메시지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가리지 않고 미성년자에게까지 보내진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들은 ‘선거 내내 대통령 당선인부터가 그렇게 행동했는데 누굴 탓하겠냐’는 식의 자조적 논평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당선 뒤 한국에서는 우리의 외교, 안보, 통상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악관뿐 아니라 상원과 하원까지 공화당이 휩쓸면서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더욱 강도 높게 추진되면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느끼기에 더 우려스러운 것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폭주하면 의회가, 의회마저 이상하면 국민이 막겠지만, 국민이 변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트럼프를 당선인으로 만든 ‘분노의 정치’, 그가 미국 사회에 준 ‘미워할 자유’가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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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비자 받고 들어와서 취재하는 것 맞죠?”
지난달 미국 대선 경합주 취재를 위해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찾았을 때 일이다. 사전투표소에서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해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한참 설명하던 백인 남성이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농담이라기엔 무례하고 장난이라기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자 “물론 B비자 받았겠죠” 하며 멋쩍게 웃었다. 언론인 비자는 B비자가 아닌 I비자다. 하지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겐 B냐 I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현장 취재를 하는 동안 경합주 도처에서 ‘성난 사람들’, 좀 더 정확히는 ‘성난 약자인 백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미국이 아닌 나라를 구분했고,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나눴다. 이들의 분노 포인트를 요약하자면 ‘진짜 약자는 난데, 민주당은 나를 뺀 엉뚱한 사람만 챙긴다’는 것이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아내와 함께 투표를 하러 온 한 백인 남성은 “아내의 장애인 보조금은 끊어놓고서 불법 이민자들에겐 이 나라 세금을 퍼주고 있다”며 깊은 분노를 표했다. 챙이 헤져 여기저기 실밥이 튀어나온 모자를 쓴 채였다. 기자에게 비자는 받았냐고 물었던 남성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를 토로하던 그의 안경다리는 스카치테이프로 고정돼 있었다.
이들은 바른말만 하는 민주당을 미워했다. 이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분명 사전 취재에서 ‘보라색(중립 성향인)’, ‘지지율 박빙’으로 분류된 지역이었는데도 막상 인터뷰를 해보면 10명 중 7, 8명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 심지어 그들은 전혀 ‘샤이’하지 않았다. 이들은 매우 명백하고, 노골적이었으며, 당당했다. 너무 화가 나서 설명하려면 1박 2일이 필요하다는 중년 백인 여성도 있었다. 이런 ‘가난한 백인의 분노’를 민주당이 아닌, 부자 중의 부자인 트럼프 후보가 공감하고 공략했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 대선 결과가 나왔다. 뉴욕에서 10년 넘게 산 한 교민은 앞으로가 두렵다고 했다. 트럼프 1기를 경험한 그는 “내가 아는 미국은 트럼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트럼프 1기가 미국 사회에 남긴 가장 나쁜 유산은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고 차별해도 괜찮다는 문화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8년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이 사는, 진보적 도시인 뉴욕조차 그렇게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고 했다. 2기가 어떨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려면 아직 두 달이 남았지만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최근 성소수자나 히스패닉계에게 ‘추방 대상자에 포함됐다’, ‘재교육 시설 입소 대상’ 등의 메시지가 뿌려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메시지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가리지 않고 미성년자에게까지 보내진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들은 ‘선거 내내 대통령 당선인부터가 그렇게 행동했는데 누굴 탓하겠냐’는 식의 자조적 논평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당선 뒤 한국에서는 우리의 외교, 안보, 통상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악관뿐 아니라 상원과 하원까지 공화당이 휩쓸면서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더욱 강도 높게 추진되면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느끼기에 더 우려스러운 것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폭주하면 의회가, 의회마저 이상하면 국민이 막겠지만, 국민이 변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트럼프를 당선인으로 만든 ‘분노의 정치’, 그가 미국 사회에 준 ‘미워할 자유’가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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