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강모 씨(35)는 최근 장을 보던 중 과일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할인 판매’라는 안내가 무색하게 손바닥만 한 딸기 한 팩이 1만 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며칠 전에 친정댁에 가져갈 귤을 사는데 4만 원을 받아 깜짝 놀랐다. 아이 간식용으로 집에 항상 과일을 사놓았지만 올해는 그러기도 부담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과일 등 농산물 물가가 14년 만에 가장 큰 폭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복되는 이상기후로 봄철 사과부터 겨울철 딸기, 귤까지 가정에서 즐겨 찾는 과일값이 줄줄이 뛴 영향이다. 최근 들어 전체 물가상승률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밥상물가와 직결되는 농산물 가격이 널뛰는 데다 ‘환율 1500원 시대’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어 새해 물가 불안이 커지고 있다.
●“딸기 케이크 팔아도 손해”
지난해 12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농산물 물가는 1년 전보다 10.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13.5%)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률이다. 품목별로 보면 배(71.9%), 귤(46.2%), 사과(30.2%), 배추(25.0%) 등 가격이 가파르게 뛰었다.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신선식품 가격은 1년 전보다 9.8% 뛰었다. 이 역시 2010년(21.3%) 이후 최고치다. 이 중 과일류가 포함되는 신선과실 물가상승률(17.1%)은 2004년(24.3%)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폭염 등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해진 게 영향을 미쳤다.
밥상물가가 연일 오르면서 가계의 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가격에 바로 반영하기 어려운 자영업자도 울상이다. 충북 청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32)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딸기를 얹은 케이크 주문이 늘었지만, 딸기 가격이 워낙 비싸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쌀, 라면 등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 역시 지난해 2.7% 올랐다.
●고환율 비상에 새해 물가 불안 ↑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2020년(0.5%) 이후 가장 완만한 오름세로 정부 물가 안정 목표치(2.0%)를 살짝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고물가가 누적돼 온 만큼 물가 둔화 흐름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서모 씨(28)는 “국밥 한 그릇이 1만 원이 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며 “월급이 그만큼 오른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 씨는 커피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회사에 인스턴트커피를 가지고 다닌다. 앞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5.1%까지 치솟았고 2023년에도 3.6%로 고공행진한 바 있다.
요동치는 환율이 새해부터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있어 당분간은 이 같은 고물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 침체에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겹쳐 최근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선에 근접하게 치솟고 있다. 이에 유가가 꿈틀대면서 지난해 12월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0% 올라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12월 소비자물가는 1.9% 올라 10월(1.3%), 11월(1.5%)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그간 높아진 환율 영향으로 1%대 후반으로 올랐다. 다음 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고환율 등으로 좀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세종=송혜미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