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이상룡 선생은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지난달 15일 찾아간 경북 안동의 임청각에는 단체관광객들로 붐볐다. 고성 이씨 종택인 임청각은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건국훈장 독립장·사진)의 생가다. 석주는 이곳에서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독립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다. 이곳을 안내하던 문화관광해설사는 “석주가 망명 직전 사당에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으며 독립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의 산실이기도 하다. 석주를 포함해 임청각에서 태어난 9명과 석주의 부인 김우락 여사, 손부 허은 등 모두 11명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됐을 정도다.
당연히 임청각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만행을 저지른다. 임청각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가 자신들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조선인을 지칭한 말)들이 다수 출생한 임청각의 맥을 끊겠다며 1941년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로를 설치한 것이다. 이로 인해 행랑채와 부속 건물들이 철거됐고, 99칸이었던 임청각은 70여 칸으로 규모가 줄었다. 지금도 임청각에선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면 옆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불편을 겪고 있다.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김호태 사무국장은 “1940년대는 일제가 전쟁을 할 때였다”며 “젊은이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 집안이 망해가는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상징인 임청각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린이날 연휴였던 지난달 4일엔 1000명 이상이 방문했을 정도다.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 전 광복회 경북지부장은 “석주 선생이 세상에 모범을 보여준 분이었다는 사실을 요즘 사람들이 많이 보고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청각을 원상대로 복원하려는 정부 계획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안동시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7년간 280억 원을 투입해 임청각을 지나가는 철로를 철거하고, 건물 일부를 다시 짓고, 석주의 독립정신을 알리는 기념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김 국장은 “6월부터 무허가 건물들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고 내년 중에는 임청각 안으로 지나가는 중앙선 철로 노선이 옮겨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동기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