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국제 인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한국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북한을 거세게 규탄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기조를 수정하고 유엔 차원의 진상조사 및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4일(현지 시간)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동아일보 질의에 “우리의 동맹인 한국의 규탄 및 북한의 완전한 해명을 요구하는 한국의 촉구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답했다. 사건의 대응 주체인 한국 정부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대북 강경 대응에 힘을 실어 주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전직 미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버타 코언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미국의 소리(VOA)에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본질을 깨닫고 대북 정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무법 행위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사례이자 인간의 모든 권리 중 가장 신성하고 궁극적인 생명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며 “한국 정부가 유엔 및 세계보건기구(WHO)에 진상조사와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얼마나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는지 알 수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한국 정부가 교훈을 얻기 바란다고 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자신들의 가정을 재평가하고 정책 및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가세했다. 외교안보매체 포린폴리시(FP) 역시 “북한이 최소한의 유감만 표명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다시 남북관계 회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국제법 위반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날 동아일보에 보낸 성명 및 통화에서 “김정은 정권 차원의 비인간적, 반인륜적 살해행위이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하겠다며 사람을 죽이는 나라는 북한뿐”이라며 “김씨 일가에 의한 살인”이라고 비판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역시 “편집증적이고 야만적인 국제법 위반 범죄행위”라고 가세했다.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다른 인권단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VOA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고 ICJ에 제소하는 일 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회부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이 국제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사건에 관해 한국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요 외신은 속보로 긴급히 전했다. 미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등은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참회 표현을 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