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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왕실 이미지 추락에 ‘군주제 유지’ 여론 9년새 16%P 하락

英 왕실 이미지 추락에 ‘군주제 유지’ 여론 9년새 16%P 하락

Posted June. 06, 2022 09:33,   

Updated June. 06, 20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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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왕을 존경하지만 그의 사후(死後)에도 군주제가 유지돼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4일 영국 런던 버킹엄궁 앞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소피아 씨는 왕실과 군주제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날 저녁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6) 즉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 콘서트에 2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정작 주인공인 여왕은 고령에 따른 거동 불편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2일부터 5일까지 4일간 열린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에서 여왕은 행사 첫날인 2일에만 등장했을 뿐 3, 4일 양일간 불참했다. 여왕의 건강 악화로 군주제 폐지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의 1일 조사에 따르면 ‘100년 후에도 군주제가 유지될 것인가’란 질문에 41%의 응답자만 ‘그렇다’고 답했다. 10년 전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유지될 것’이라고 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기간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75%에서 59%로 뚝 떨어졌다. 특히 18∼24세 젊은층은 33%만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군주제가 영국에 이롭다’는 응답도 2012년 73%에서 올해 56%로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2일 치러진 플래티넘 주빌리 첫 행사 ‘군기분열식’의 시청자는 750만 명으로 과거 왕실의 주요 행사 때 시청자보다 훨씬 줄었다.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이 2011년 결혼할 때는 무려 260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다. 지난해 4월 타계한 여왕의 남편 필립공 장례식 때도 1300만 명이 시청했다. 찰스 왕세자의 불륜 및 이혼,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의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 왕실 내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해 왕실을 떠난 해리 왕손 부부 등의 사건으로 왕실 이미지가 크게 하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이날 버킹엄궁 근처에서 만난 또 다른 시민 케이든 씨는 “내 세금으로 왕실 가족이 호의호식하는 것이 싫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왕실 일가가 쓰는 돈 ‘왕실 교부금(sovereign grant)’은 2012년 3240만 파운드였지만 지난해는 세 배에 가까운 8630만 파운드(약 1350억 원)로 급증했다. 미 CNN은 많은 영국 젊은이들이 왕실은 비민주적이며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설사 군주제 폐지를 찬성한다 해도 이는 여왕의 사후에 논의할 사안이며 여왕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군주 직위를 맡겨야 한다는 여론 또한 높다. 유고브의 4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58%는 ‘여왕이 살아 있는 한 군주직을 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제 은퇴하고 왕위를 물려줘야 한다’는 답은 26%에 불과했다.

 4일 콘서트에 참석한 왕위 계승 서열 1위 찰스 왕세자(74)는 여왕을 향해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며 70년간 그 자리를 지켜주셨다. 당신은 역사를 쓰고 계신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날 여왕을 ‘엄마(mummy)’, 지난해 타계한 부친 필립공을 ‘아빠(papa)’라고 불러 관중의 환호를 받았다. 왕실은 여왕이 인기 곰 캐릭터 ‘패딩턴 베어’와 차를 마시며 농담을 나누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