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모르고, 원자폭탄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어요. 약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전쟁은 시작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1945년 8월 6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실전에 쓰인 원자폭탄 피해를 일본 히로시마에서 경험한 피폭자 가지모토 요시코(梶本淑子·91) 씨는 “일본이 핵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외신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손을 내저었다.
가지모토 씨는 2000년부터 22년째 히로시마평화기념관에서 피폭 때 체험을 증언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11월 히로시마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났고 원폭 투하 70주년이던 2015년에는 영국 상하원 의회에 화상(畵像)으로 피폭 체험을 전했다. 14일 일본 포린프레스센터 주최로 히로시마에서 한국을 비롯한 외신 특파원들과 만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일으킨 잔혹했던 전쟁 경험을 생생히 증언했다.
“소(초등)학교 5학년 때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나는 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입니다. 선생님들은 ‘올바르고 정의로운 전쟁이기 때문에 일본이 이기면 세계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먹을 게 없어도, 고아가 돼도 모두 전쟁을 위해 힘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정부와 군부가 국민 입을 틀어막던 기억도 어제 일 같다.
“그때만 해도 치안유지법으로 단속하던 시대입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이 전쟁에서 일본은 질 거야’라고 하니 어머니가 ‘그런 말 잘못하면 큰일 난다. 밖에 나가서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전쟁에 반대한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당시 가지모토 씨는 비행기 프로펠러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창밖에서 번쩍 하며 하얀 빛이 나자 평소 훈련받은 대로 눈 귀 코를 양손으로 막고 바닥에 엎드렸다.
“지구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난 뒤 무너진 천장과 벽 아래에서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깨어난 뒤 밖에 나가보니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어시장 생선처럼 시체가 길바닥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화장터였고 지옥이었어요.”
원폭 폭발은 한순간이었지만 가지모토 씨의 고통은 평생이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원폭 후유증으로 숨졌고 어머니는 20년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며 고통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젊은 시절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피폭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 ‘피폭자는 방사능 때문에 장애인을 낳는다’ 같은 손가락질과 차별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손자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혹시 내가 피폭돼 그런 건 아닐까’하며 자책했다고 한다.
가지모토 씨는 “일본은 전쟁에서 진 것이다. 종전(終戰)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패전(敗戰)이다”라면서 “일본이 (당시)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그만뒀다면 이렇게 잔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로시마=이상훈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