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런 형식의 연주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사전 인터뷰에서)
짙은 색깔의 재킷에 검은색 셔츠. 1시간가량 진행된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70)의 연주회는 누가 봐도 ‘종언(終焉)’을 고하는 분위기가 여실했다. 백발에 야윈 기색이 역력한 사카모토는 연주회 내내 ‘딱 한 번’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11일 낮 12시 처음 공개된 온라인 콘서트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2022’는 2020년 12월 무관객 피아노 솔로 콘서트 이후 2년 만에 가진 공연. 지난해 1월 직장암 투병 사실을 밝힌 사카모토는 그간 수술대에 6번이나 올랐다. 도쿄 NHK방송센터에서 녹화한 영상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송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라이브로 콘서트할 체력이 안 된다”는 그의 의사를 반영했다.
영화 ‘리틀 부다’의 배경음악(OST)인 ‘Improvisation on Little Buddha Theme’로 시작된 공연은 모두 13곡의 음악이 연주됐다. 초반부는 투병 생활에 힘겨운 심경이 반영된 듯 어두운 곡들이 많았다. 흑백으로 처리된 영상에서 사카모토는 앞으로 쏟아질 듯 고개를 묻은 채 연주에 전념했다. 앨범 ‘L.O.L’의 오프닝 테마와 영화 ‘토니 타키타니’ OST ‘Solitude’의 스산한 멜로디는 영혼이 실린 듯 묵직하면서도 또렷했다.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그를 대표하는 음악 3곡이 연이어 연주되던 순간. ‘The Sheltering Sky’(영화 ‘마지막 사랑’ OST), ‘The Last Emperor’(‘마지막 황제’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전장의 크리스마스’ OST)가 나뭇가지처럼 야윈 손가락을 타고 강렬하게 퍼져 나갔다. 마지막 황제를 연주하는 클라이맥스에선 사카모토의 거친 숨소리가 살짝 들려오기도 했다.
사카모토가 한 번의 미소를 보여준 것도 이때였다. 입을 꽉 다문 채 내내 굳은 표정이었지만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연주하며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잠시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그는 “이 모든 시간을 지나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듯하다”는 묘한 선문답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온라인 공연은 12일까지 한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등 30개국에서 방영된다. 공연을 관람한 이들은 내년 사카모토의 생일인 1월 17일에 발매하는 새 앨범 ‘12’도 들을 수 있다. 공연 티켓 가격은 30달러(약 3만9000원).
김재희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