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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문화재 매매 장부, 미국인이 기증

일제강점기 문화재 매매 장부, 미국인이 기증

Posted December. 20, 2022 08:48,   

Updated December. 20, 202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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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부터 20년간 한국 문화재를 거래한 외국인 명단을 기록한 장부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연구 등에 필요하다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1958년부터 미군 군무원으로 30여 년간 한국에 살았던 로버트 마티엘리 씨(97)는 올해 초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연락했다.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그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재단 연구원들을 자택으로 초대했다. 자신이 그동안 모은 한국 문화재 1946점을 조사 연구하도록 한 것이다.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던 6월. 재단 실태조사부의 김륜용 선임(36)이 마티엘리 씨의 자택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 마티엘리 씨는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것인데 보여줄 게 있다”며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1936∼1958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영업했던 ‘사무엘 리 고미술상’ 고객 장부로, 당시 거래된 우리 문화재 품목과 거래자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보자마자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직감했어요.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들이 언제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마티엘리 씨에게 ‘국외 문화재를 추적할 중요한 사료’라고 했더니 곧장 한국에 기증하겠다고 했습니다.”(김 선임) 

 재단은 이 고객 장부를 포함해 마티엘리 씨가 소장하던 당대 문화재 관련 사료 60점을 기증받았다고 19일 밝혔다. 고미술상을 운영한 사무엘 리가 그에게 남긴 장부에는 670건이 넘는 한국 문화재 거래 목록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김 선임은 “거래 장부를 연구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유출 경로를 파악해 연구 및 환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엘 리 장부에는 눈에 띄는 인물도 있다. 장애를 극복한 세계적인 사회복지사업가 헬렌 켈러(1880∼1968)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7월 강연 및 연설을 위해 방한했던 그는 고미술상에서 서안(書案·책을 읽는 좌상)을 구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 문화재에 애정이 깊은 마티엘리 씨는 1725년 제작된 조선 불화 ‘오불도’를 2016년 국내에 반환하기도 했다. 1970년 서울 종로구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작품으로, 2014년 미 포틀랜드박물관에 기탁하는 과정에서 전남 순천 송광사 소유였다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티엘리 씨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란 소식을 듣고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돼 다행이다”라며 대한불교조계종에 이를 기증했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