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민음사)에서 여자 주인공 미도리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암 투병 중인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미도리는 “좋다”며 먹기 좋은 크기로 오이를 자른다. 김을 말아 간장에 찍은 뒤 이쑤시개를 꽂아 아버지에게 오이를 먹인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씹어 목 안으로 넘기고선 “맛있다”며 웃는다. 미도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먹는 게 맛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음식평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신간에서 이 장면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5)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는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아픈 이와, 수분을 한껏 머금은 아삭한 오이가 빚어내는 생기의 대조가 극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하찮게 보일 법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손길로 음식으로 승화한다는 것은 일상에서든 소설에서든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학 작품 속에 담긴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각 시대상을 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1832∼1888)의 장편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들은 절인 라임을 먹는다. 당시 바닷물에 절인 상태로 들여온 라임은 생과일로 분류되지 않아 관세가 낮았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앨리스 워커(80)의 장편소설 ‘컬러 퍼플’(문학동네)에서 미국 남부에 사는 흑인들은 비스킷을 자주 찾는다. 팽창제가 비싸 백인들이 먹는 스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강(54)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창비)에서 주인공은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남편과 싸운다. 비록 15년 전 소설이지만 대체육이 늘어나고, 채식주의 식당이 늘어난 요즘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조남주(51)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에는 가족을 위해 식사를 차려야 했던 엄마의 고달픈 삶, 이창래(59)의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알에치코리아)에는 미국식 중식을 먹으며 살아온 재미교포들의 인생이 담겼다. 오늘은 ‘먹방’ 유튜브 대신 이 소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