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이 거센 일본에서 사상 최초로 지상파 방송 황금시간대 드라마에 한국 배우가 주연으로 발탁됐다.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수많은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수출됐고 심야 드라마 등에 한국 배우가 출연한 적은 있지만, 시청률 경쟁이 가장 치열한 프라임 타임에 한국 배우 주연 드라마가 편성된 건 일본의 뜨거운 한류 열기를 보여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민영방송 TBS는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방영하는 새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의 첫 회를 23일 방송했다. 모델 출신 남자 배우 채종협과 일본의 인기 여배우 니카이도 후미가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첫 회 기준 시청률 5.5%로 무난하게 출발했다.
채종협이 연기하는 한국인 유학생 ‘윤태오’는 일본 대학에서 멸종위기 동물을 연구하며 한국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니카이도는 이웃에 사는 초콜릿숍 사장 ‘유리’로 나온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한국 음식을 배달시켰다가 우연히 윤태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일본 방송사가 만든 일본 드라마이지만, 한국 드라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 관련 소재가 많다. 비빔밥, 부침개, 라볶이 등 한국 음식에 푹 빠진 여주인공 유리는 한글 간판이 가득한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남주인공 윤태오 또한 한국어로 “좋아한다”고 중얼거리고 한글이 쓰인 물건을 종종 들고 나온다.
인터넷 매체 ‘뉴스포스트세븐’은 “한국 배우의 인기는 아직 K팝만큼 폭넓지 않지만, 이번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일본 드라마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류를 빼면 대중문화 유행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류 열기가 절정이다. 지난해 말 방영된 공영방송 NHK의 대표 연말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는 르세라핌, 뉴진스, 세븐틴 등 5팀의 K팝 아이돌 그룹이 출연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1∼1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999만5000명) 중 1위는 일본(212만 명)으로 중국(176만 명) 미국(100만 명) 등을 크게 앞섰다. 만화 왕국 일본의 웹툰 애플리케이션에서도 네이버 계열 ‘라인 망가’와 카카오 계열 ‘픽코마’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