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브라티슬라바, 너도 나도 『사장님』

  • 입력 1997년 1월 9일 20시 49분


「브라티슬라바〓金昶熙특파원」 중동구 취재출장을 떠나면서 면도기를 챙기지 못해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큰 연쇄점 케스코부터 찾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래쪽의 예쁘장한 가게 하나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프린트 숍」이라는 깔끔한 간판 아래 명함 안내장 따위를 인쇄해주는 점포였다. 꽤 북적거렸다. 자본주의 체제의 첫 산물인 자영업자들이 재벌의 꿈을 키우며 이곳을 드나들었을 터였다. 「생산」만 하면 되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마케팅」 「홍보」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자본주의로 가는 과정에 명함은 필수품이었을테니까. 명함가게 키쉬사장(45)의 설명은 더욱 확실했다. ―장사는 잘 되는가. 『브라티슬라바는 방문객이 많은 도시다.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주고객인데 하루에 1백∼2백명씩 명함을 만들려고 온다』 ―어떻게 이런 가게를 할 생각을 했나. 『나는 원래 컴퓨터 전문가다. 10여가지 모델을 미리 만들어놓고 고객의 주문대로 인쇄해주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5년전 이 연쇄점에 명함가게를 처음 열었다. 지금은 전국에 같은 상호의 가게를 7군데 갖고 있다. 브라티슬라바 시내에만도 「유사상점」이 수십곳 있다는 게 그의 설명. 고객은 자영업자가 가장 많고 회사원 건물소유주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 그의 마지막 설명이 걸작이었다. 『아마 슬로바키아에서 받은 명함은 대부분 「사장」과 「지배인」일 겁니다. 너도나도 그렇게 명함을 새기더군요. 저도 사장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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