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8)

  • 입력 1997년 1월 29일 20시 19분


짧은 봄에 온 남자〈10〉 어둠 속에서 아저씨는 소년처럼 웃었다. 어쩌면 그 웃음은 나도 한 때는 그런 것에 가슴 설레고 풋풋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는 웃음같았다. 『어릴 때 아빠에게말고는 저 이제까지 한 번도 누구에게 그런 선물을 주어본 적이 없어요. 처음이에요, 아저씨가』 『영광인 걸. 감동적이고』 그 말로 아저씨는 그것을 두 사람 사이의 아무것도 아닌, 한 여자 아이의 단순한 어리광으로 만들어버렸다. 정말 가슴이 멎을 만큼 영광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강바람을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실어 전에 아저씨가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원래는 비극적이고도 정열적인 사랑이라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아저씨 앞에 비극적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녀가 보기에 아저씨는 이미 충분히 비극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스물두 살의 여자가 생각할 수 있는 이혼이란 언제나 그런 의미부터 떠올랐다. 그래서 아저씨가 슬픈 거라고. 『이렇게 걸으니까 좋군. 오랜만에 나온 길이고…』 『그 말 진심이죠?』 『왜?』 『지난 번 걸을 땐 그런 말 안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 말을 하니까 참 좋아요. 나 이제 아저씨한테 더 자주 나올 거구요』 그녀는 아저씨의 팔을 더욱 꼭 잡았다. 꽤 오랜 시간 아저씨와 강변을 걸었고, 어두운 밤이 되었을 때 아저씨가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이제 팔을 놓고』 택시에서 내리면서 아저씨가 말했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것 알아요?』 『언제는 무서웠어?』 『오늘도 아저씨가 지난번처럼 중간에 들어갈까봐 걱정을 했거든요. 난 아저씨가 이렇게 저하고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런 거 아저씨 알아요?』 『아니, 모르겠는걸』 『그럼 아세요. 제가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말을 한 거예요, 지금』 그녀는 아까처럼 발돋움해 다시 아저씨의 볼에 자기의 볼을 살짝 대었다 떼었다. 『다음에 만나면 또 해 드릴 거예요. 아셨죠?』 그 말에 아저씨는 다시 소년처럼 웃었다. 그 웃음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글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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